지난 18일 밤 세계 최대 네트워크 장비업체 시스코의 척 로빈스 최고경영자(CEO)가 방한했다. 지난해 7월 CEO에 취임한 그가 아시아 국가를 방문한 것은 처음이다. 시스코 CEO가 한국을 찾은 것도 2009년 이후 7년만이다.
여장을 푼 로빈스 CEO는 19일 오전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를 방문,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과 만났다. 오랜 파트너인 삼성전자보다 먼저 현대차로 달려 간 셈이다.
정 부회장과 로빈스 CEO는 이날 사물인터넷(IoT)에 기반한 인공지능(AI) 자동차(커넥티드 카ㆍConnected Car)를 위해 협력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특히 데이터 송수신을 제어하는 커넥티드 카의 핵심 기술인 ‘차량 네트워크’ 개발에 힘을 쏟기로 했다. 현재 자동차엔 소용량 저속 네트워크가 적용되고 있지만 커넥티드 카는 정보 처리량이 많아 차량 내 초고속 연결망이 필수다. 현대차는 시스코의 네트워크 기술력을 활용, 독자적인 커넥티드 카 플랫폼을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다.
정 부회장은 “시간과 공간을 물리적으로 연결하는 커넥티드 카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놀랍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것”이라며 “시스코와의 협업은 현대차가 주도하는 미래 커넥티드 카를 조기에 현실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현대차를 IoT 협업 파트너로 선택한 로빈스 CEO도 “자동차 산업의 디지털화를 통해 파괴적 변화를 이끌겠다”며 “우리의 디지털화 전략과 현대차와의 협업은 자동차 산업의 진보로 이어질 것”이라고 화답했다.
현대차와 시스코는 차량 네트워크 기술 외에도 커넥티드 카 시험 사업 등도 공동 진행한다. 여기에 혁신 창업 기업(스타트업)들의 참여 기회를 제공,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도 지원할 방침이다.
글로벌 선두 기업인 시스코와의 협업은 현대차에겐 큰 변화다. 쇳물부터 완성차까지 독자 생산 체계를 구축해온 현대차가 외부 기업과 손을 잡는 것은 이례적인 모습이다. 이는 정보통신기술(ICT)의 빠른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미래 경쟁력을 담보할 수 없다는 위기감과 절박함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대차는 시스코 외에도 스마트 홈 등 다양한 분야의 글로벌 업체들과 협업을 구상 중이다.
시스코 역시 자동차가 IoT의 융합체로 진화하고 있어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의 협업이 필요했다. 로빈스 CEO는 취임 이후 줄곧 “혁신의 가장 큰 화두는 IoT와의 협업”이라고 강조했다.
로빈스 CEO는 이날 최태원 SK그룹 회장,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과도 잇따라 만났다. 로빈스 CEO는 SK와 통신ㆍ반도체 분야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시스코의 서버를 사용하고, 시스코는 서버용 반도체를 삼성전자에서 공급받고 있다. 자동차 전장 사업팀을 꾸린 삼성전자와 시스코의 협력 논의 여부가 관심을 끌었지만 삼성전자측은 “첫 방한이라 서로 인사를 나누는 수준이었으며 IoT 기술개발 협력은 논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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