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담 위에 쓸쓸히 앉아 있는 오드 아이를 보았다. 오드 아이는 두 눈의 색깔이 각각 다른 동물을 일컫는 말로써, 고양이에게서 가장 많이 보인다. 들고나는 동물들도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성향에 맞춰지는 것일까. 값비싼 오드 아이를 봤던 집에 사는 사람과 내 삶은 확연히 다르다. 우리 집에는 늘 다쳤거나 센 놈에게 쫓기는 고양이들이 모습을 나타낸다. 고양이가 나타나기 전에는 시궁쥐가 나타났다. 그런데 왜 하필 오드 아이는 동물이라면 질색인 그 집에 가 있는 것일까. 이상한 것은 지난겨울에도 어디선가 나타난 오드 아이가 정확히 그 자리에 앉아 있곤 했는데, 혹한에 얼어 죽고 말았다. 실내에서 따뜻하게 살았을 그 녀석에게 스티로폼 상자 하나 마련해주지 못한 게 늘 마음에 걸렸는데, 다시 나타난 귀한 오드 아이라니. 유전자 조작에 따른 부작용으로 인해 천성적 병이 많은 품종이라 그런지 자꾸 눈에 밟힌다. 이따금 반려인을 잃은 동물들이 골목에 모습을 나타낸다. 그 녀석들이 가장 많이 보였던 때는 골목 끝에서 막 재개발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패닉이 되었거나 슬픔에 잠겨 있던 그 많은 생명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아프다. 부디 내일 아침엔 내가 본 오드 아이를 찾는다는 인쇄물이 골목에 붙어 있길 바란다. 그렇게만 된다면, 첫 번째 제보자는 내가 될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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