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남의 상습 폭행에 시달리던 30대 여성이 3차례나 112 신고를 했지만 결국 훈방된 동거남에게 사흘 뒤 살해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서울 방배경찰서는 동거녀를 죽인 뒤 자수한 이모(37)씨를 살인 혐의로 긴급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18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12일 새벽 말다툼 끝에 1년 가까이 함께 살던 여자친구 정모(36)씨를 목 졸라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닷새 동안 시신을 집에 방치해오다 17일 오전 6시20분쯤 경찰에 전화해 “동거녀를 죽였는데 시신이 집에 있다”고 말한 뒤 경찰에 자수했다.
경찰 조사 결과 피해자 정씨는 숨지기 사흘 전인 9일 새벽 이씨에게 폭행을 당하고 있다며 112 신고를 했다. 정씨는 또 경찰이 도착하기 전까지 6분 동안 두 차례 더 전화를 걸었다. 경찰은 이에 최근 세분화한 112 신고 대응 단계에 따라 위험이 임박했거나 진행 중일 때 적용하는 ‘코드 1’ 신고로 분류하고 즉각 출동했다.
하지만 경찰은 지구대로 데려온 정씨로부터 간단한 피해 진술서만 받고 나서 이씨를 훈방 조치했다. 경찰 관계자는 “가능한 한 이씨를 처벌하는 쪽으로 정씨를 설득했지만 피해자가 처벌은 물론 임시격리 조치도 거부해 권리 고지서만 배부하고 귀가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마땅한 직업이 없는 이씨는 최근 생활고로 정씨와 다툼이 잦았고 결국 12일 말싸움을 하다 감정이 격해져 동거녀를 살해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경찰은 정확한 사인을 규명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시신 부검을 의뢰했다.
양진하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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