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자”
시민들 순결 집착에 토론 실종
깊이 생각할 권리, 의무 잊어
기억은 제도와 실천의 문제
추모 이후의 일을 고민할 때
총선 보름 전 선거 공보를 읽다 은평구 국회의원 후보 중 ‘세월호 변호사’가 있다는 걸 알았다. 10년 가까이 인권변호사로 일하다 세월호 참사 후 유족들의 법률대리인을 맡아온 사람이었다. 인쇄물 안에 많은 설명이 담겨 있진 않았지만 ‘세월’과 ‘법률’ 사이, 2014년과 2016년 사이 고인 시간의 밀도를 느낄 수 있었다.
며칠 뒤 박주민 변호사의 당선 소식을 들었다. 박 당선자의 선거운동을 도운 사람 중 세월호 유족분들이 계셨다는 얘기도 접했다. 세월호 잠수사 김관홍씨가 운전사를 자청하고, 인형 탈을 쓴 영석이 아버지가 온종일 거리에서 춤췄다는 기사를 보고 한동안 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건 따로 있었다. 선거 막바지에 상대 후보가 지역 당원들에게 돌렸다는 문자메시지였다. 그 후보는 ‘세월호 점령군에게 은평을 맡길 수 없다’고 했고, 4월 11일 유세장에서도 같은 말을 반복했다.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볼 권리
누군가 내게 ‘지난 2년 간 가장 달라진 게 무엇이냐’ 묻는다면 언어라 답하고 싶다. 세월호를 가리키고, 세월호를 다루는 말이 바뀌었다 말하고 싶다. 언젠가부터 세월호 관련 기사에 어김없이 무례하고 모욕적인 댓글이 달렸다. 어느 때는 사회 지도층이 나서서 그 말을 주도했고, ‘보상’ ‘종북 프레임’이 그 일을 도왔다. 어느새 나도 그런 말들에 점점 덜 놀랐다. 저열함에 대한 내성이 생겨, 폭력에 대한 반응의 역치가 높아졌다.
종북 프레임이 지나치게 이념적이라면 그 반대쪽에는 ‘세월호를 이용하지 말자’든가 ‘정치적 공방이 일 수 있는 일은 피하자’는 식의 논리가 자리했다. 하지만 나 역시 발화의 자리를 서둘러 깨끗이 치우는 대신 묻고 싶다. 중요한 사회적 의제를 정하고, 토론하고, 합의하는 과정에 정치라는 말이 왜 금기시되어야 하는지. 각 정당은 물론이거니와 시민의 존재 방식 중 하나인 정치를 왜 오염된 무엇으로 취급해야 하는지. 우리가 언제부터 발언의 자격을 얻기 위해 무결한 존재가 되어야 했는지. 순결한 주체는 누구고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지. ‘순수’도 이데올로그 아닌지. 그것도 전체주의가 아끼는 이데올로그인 적이 있지 않았나 되묻고 싶다.
‘나는 그 색(色)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매번 소모적인 과정을 거친 한국의 지난한 역사가 떠오른다. 국가폭력 앞에서 피해자는 늘 위로받고 이해받기 전, 오해받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렇지만 애도를 방해하고 처벌하는 나라에서 ‘겨우 오해받지 않을 말’들이 설 자리는 얼마나 되나. 그렇게 위축된 말들이 사회적, 역사적 상상력과 만나며 뻗어나갈 가능성은 적다. ‘세월호는 선거에 도움이 안 되고’ ‘슬픔은 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는 논리 역시 모든 걸 교환가치로 여기며 평형수를 빼낸 셈법과 다를 바 없다.
당대에 가장 중요한 문제는 다른 의제와 연결돼 여러 질문을 촉발시킨다. 현재 우리에게는 세월호 문제가 그렇다. 복잡한 이야기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이야기는 까다롭게 다루는 게 맞다. 그런데 권력은 세월호 참사를 자꾸 한 가지 방식으로 인식하라 말한다. ‘불운의 사고’라든가 ‘보상이 끝난 문제’라는 식으로 이해하라 권한다. 그리고 그 단순함을 순수라 칭한다. ‘순수 유가족’ 할 때 그 순수가 여전히 시민들을 감별하며 따라다닌다. 시민들은 세월호를 역사적으로 감각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단원고 학생들이 구해낸 한 아이
나는 안전한 나라에 살고 싶다. 그렇지만 ‘안전하기만 한’ 나라를 바라진 않는다. 복잡한 것은 복잡하게 사고하고, 표현할 수 있는 나라를 원한다. 안전은 최소값이다. 그런데 그 최소가 이 나라에서 최대가 됐다. 지난 2년 간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밝혀진 건 거의 없다. 상황은 더 나빠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번번이 나를 놀라게 하는 건 그렇게 더 나빠진 상황 속에서 무언가를 계속 해온 사람들이다. 최근 ‘세월호, 그날의 기록’(진실의 힘 발행)을 읽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월호 기록팀은 책 서문에 ‘한 사람을 생각하며 포기 하고 싶은 유혹을 견뎠다’고 적었다. ‘10년쯤 지난 후에 이 책을 읽어주길 바라는 사람입니다’라고 밝힌 그 사람은 단원고 학생들이 구한 다섯 살 난 여자아이였다.
한 사람을 생각한다. 우리 모두의 한 사람, 저마다의 한 사람을. 구체적인 얼굴과 이름을 가진 그 한 사람의 무게가 우리가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이자 미래의 무게이지 않을까. 피해자가 비난받고, 희생자가 의심받는 풍토를 우리가 발 딛고 선 땅의 기본 성질로, 기본 값으로 놔두고 싶지 않다. 그런 사회에서 어떻게 ‘공동체’를 말하고 ‘희망’을 말할 수 있나. 사람들이 세월호를 ‘지겹다’고 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사건이 너무 오랫동안 한 자리에 붙박여 있어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제 이 사건의 자리를 다른 곳으로 옮겨줘야 하지 않을까. ‘잊지 않겠다’는 건 그 ‘일’뿐 아니라 ‘그 일 이후’를 고민하고 지켜보겠다는 약속과 다르지 않다. ‘기억’은 의지와 마음의 문제이기 이전에 제도와 실천, 해석과 규명의 문제다. 우리는 이제 ‘슬픔’과 ‘공감’ 다음으로 나가야 한다.
김애란ㆍ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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