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여전히 나눔에 인색하고 선행에 어색한 편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고소득, 전문직, 자영업자들의 세금 탈루 비율은 해마다 늘어 “있는 사람들이 더 하다”는 서민들의 볼멘 소리도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프로야구 선수들도 한 때 고액 연봉자들 일수록 팀 성적보다 개인 옵션 챙기기에 급급해 푼돈에 집착한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얼마 전 SK 최정(29)은 양준혁 야구재단을 통해 2억원을 쾌척했다. 그는 “점점 저변이 약해지는 초등 야구를 위해 도울 방안을 찾다가 기회가 닿았다”고 말했다. 2014년 말 4년간 총액 86억원의 자유계약선수(FA) 대박을 터뜨린 최정에게 ‘고작 2억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베푼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삼성 장원삼(33)은 야구계 대표적인 ‘기부 천사’다. 지난 2013년 FA 계약(4년 60억원)을 하자마자 모교에 총 2억원을 기부했다. 2014년엔 5,000만원을 더 냈고, 지난해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500만원을 기부했다. FA가 되기 전에도 그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쌀을 보낸 사실이 한 팬에 의해 알려지기도 했다.
박석민(31)은 지난해 말 NC와 4년 총액 96억원에 FA 계약을 하면서 연 2억원씩 총 8억원을 어려운 가정 환경의 어린이를 돕는데 쓰기로 아예 계약서에 명시를 했다. 한화 김태균(34)은 2012년 프로야구 선수 최초로 ‘아너 소사이어티(1억원 이상 기부)’에 가입했고, 강민호(31ㆍ롯데)는 연고지의 수해피해 성금을 내 놓았다.
지난해 국내 아동 복지시설을 통해 자선 행사를 열었던 에릭 테임즈(30ㆍNC)는 “한국에서 받은 사랑을 팬들에게 돌려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팬 없는 야구는 존재할 수 없다. 그들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주는 일은 박찬호(43)와 이승엽(40ㆍ삼성)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군 복무 전 KIA에서 연봉 1억5,000만원을 받았던 안치홍(26ㆍ경찰 야구단)은 신인 때부터 한 해 동안 자신이 기록한 안타와 도루 등 세부적 기록에 따라 금액이 올라가는 기부를 실천했다. 6년 동안 그의 기부금을 받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2014년 11월 군 입대를 앞둔 안치홍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지금도 안치홍은 경찰야구단에서 받는 월급까지 모아 기부하고 있다.
프로야구 1군 선수들의 연봉은 올해 평균 2억원을 넘어섰고, 수십억원을 거머쥐는 FA 선수들은 늘고 있지만 선행에 대한 소식은 자주 접할 수 없었다.공개되길 꺼려했던 최정은 “다른 선수들도 여러 경로를 통해 다양한 기부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남몰래 시작한 기부 활동, 투병 중인 야구인들에게 전하는 성금, 모교에 선물하는 야구용품 등 헤아릴 수 없는 크고 작은 선행은 도움 받은 이들의 입을 통해서 세상에 알려졌다.
최근 수년간 승부조작, 해외 원정 도박, 음주사고로 얼룩진 프로야구 선수들의 도덕적 해이가 집중 포화를 맞는 동안 이렇게 남몰래 ‘노블리스 오블리주’(가진 자의 도덕적인 의무)를 실천하는 기부 천사들도 그라운드에서 묵묵히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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