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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말할 수없는 딸들... 우리가 말해야죠

입력
2016.04.18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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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크리에이티브 바키의 신작 '그녀를 말해요'는 사실 취재를 바탕으로 배우와 연출이 공동창작한 '다큐 연극'이다. 배우 성수연이 단원고 희생자 304명의 이름을 하나 하나 부르며 세월호를 '기억'한다. 서울문화재단 제공
극단 크리에이티브 바키의 신작 '그녀를 말해요'는 사실 취재를 바탕으로 배우와 연출이 공동창작한 '다큐 연극'이다. 배우 성수연이 단원고 희생자 304명의 이름을 하나 하나 부르며 세월호를 '기억'한다. 서울문화재단 제공

세월호 2주기를 이틀 앞둔 14일, 연극 ‘그녀를 말해요’(이경성 구성ㆍ연출, 극단 크리에이티브 바키)가 서울 남산예술센터 무대에 올랐다. 공연이 시작되면 다섯 명의 배우가 차례로 등장해 그녀를 말한다. 그녀란 바로 단원고 유예은, 박예슬, 황지현, 정예진, 문지성의 엄마다.

배우들의 말 속에서 그녀의 표정, 말투, 그녀가 사는 일상이 보인다. 그런데 배우가 말하고 있는 그녀는 지금 또 다른 그녀, 즉 더 이상 만질 수도 볼 수도 없게 되어버린 자신의 딸에 대해 말하는 중이다. 가수가 꿈이었던 어린 그녀, 늘 사랑해달라고 조르던 어린 그녀,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던 어린 그녀, 그리고 자신의 못생긴 남자친구와 결혼하겠다던 어린 그녀를 말한다. 그 말 속에서 마치 바로 여기에 그녀가 서 있는 듯, 다섯 그녀의 어린 얼굴이, 맑은 목소리가, 장난기 섞인 몸짓이 보인다.

남산예술센터의 큰 무대에는 객석을 마주보고 다섯 개의 의자만이 나란히 놓여 있다. 극적인 사건도 인물도 없다. 이 공연을 준비하며 배우들이 했던 것은 직접 그녀들을 찾아가 그녀와 그녀가 하는 말을 자신의 몸과 가슴에 깊이 새겨 넣는 일이었다. 이제 배우들은 무대 위 의자에 앉아 불필요한 감정적 수사나 움직임을 절제하고 객석을 둘러보며 차근차근 그녀의 말을 말한다. 그렇게 전하는 이 말들이 관객의 귀를 통해 가슴으로 파고든다. 그 말 속에서 안타깝게 사라진 그녀의 몸이, 그 몸이 있던 시간이, 공간이 보인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여전히 잊지 못하는 또 다른 그녀, 즉 엄마의 아픔과 슬픔이 느껴진다.

공연의 압권은 배우 성수연이 무대 앞쪽에 서서 자신이 사진 속 얼굴들을 들여다 보며 마음으로 직접 기억한 세월호 희생자 304명의 이름 모두를 하나하나 불러내는 순간이다. ‘세월호 희생자’라는 단위명칭 안에 묻힌 그 많은 이름들이 배우의 호흡을 타고 천천히 무대를 채워가면 극장은 그 자체로 기록과 기억, 애도의 공간이 된다. 공연의 마지막 장면도 인상적이다. 무대 위에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나란히 서서 말없이 객석을 바라본다. 그것은 극장 밖 세월호의 아픔과 슬픔을 직접 보고 듣고 최대한 가감 없이 무대 위에서 전했던 오늘처럼, 앞으로도 현실의 슬픔과 분노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연극(인)의 역할과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겠다는 그들의 다짐이자 약속이었다.

극단 크리에이티브 바키의 신작 ‘그녀를 말해요’. 서울문화재단 제공
극단 크리에이티브 바키의 신작 ‘그녀를 말해요’. 서울문화재단 제공

이경성과 극단 크리에이티브 바키는 작년에 이미 세월호 참사를 한국의 현대사 속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많은 폭력과 죽음의 맥락 안에서 함께 조명했던 ‘비포 애프터’로 연극계 안팎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들은 희곡을 무대에서 재현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거부한다. 연출, 배우, 스태프들 모두는 관련 자료를 조사하고 수집하고 토론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에 함께 참여해 공연을 완성한다. 이런 그들의 작업이 주목하는 것은 특정 인물이나 사건 자체보다는 그 인물의 삶과 사건의 흐름을 결정하고 심지어 일방적으로 변형시키는 정치, 경제, 문화적 힘들의 실체와 맥락을 드러내는 일이다. 배우는 연기자라기보다 보고자, 전달자에 가깝다. 그들의 연극을 보러 극장을 찾은 관객들이 무대 위의 인물과 사건, 상황들에 대해 더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는 이유다.

본래 이경성의 작업은 극장이 아닌 우리의 일상공간을 연극적으로 탐색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진행된 ‘당신의 소파를 옮겨드립니다’(2010), 문화역 서울에서 공연한 ‘프로젝트 틈’(2013), 그리고 역시 광화문에서 공연했던 ‘나의 시대에 고함’(2014) 등은 지금도 한국연극 안에서 대표적인 ‘장소특정적’ 공연들의 예로 언급되고 있다. ‘그녀를 말해요’처럼 사건 이면에 작동하는 힘들을 보여주는 작업은 그들이 일상공간이 아닌 극장이라는 제도적 공간 안에서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던 ‘남산도큐멘타: 연극의 연습-극장편’(2014)에도 적용되었다. 그들은 이 연극이 공연되었던 남산예술센터가 위치한 남산의 역사적 맥락, 그리고 특히 유신독재시절 권력이 이 극장을 본래의 기능과 달리 왜곡하고 변형시켰는가를 탐색했다.

인물을 연극의 대상으로 삼을 때도 예외가 아니다. ‘강남의 역사-우리들의 스펙, 태클의 서사시’(2011)에서는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부모를 살해했던 한 청소년의 비극을 그가 살았던 지역이 갖는 환경적 요인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탐구 속에서 재맥락화했다. ‘몇 가지 대화의 방식들’(2014)은 70세 할머니의 인생을 한국현대사의 흐름과 병치시킴으로써 개인의 삶 속에 작동하는 정치사회적 힘들의 지형을 짚어내기도 했다.

지난 2년간 한국연극은 심한 몸살을 앓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극장 밖 현실 곳곳에서 목격되는 절망과 참담을 외면한 채 돌아앉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그 불행의 크기와 깊이가 너무나 큰 탓에 그것을 감히 담을 수 있는 연극의 언어를 찾는다는 것 또한 그 이상으로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많은 연극, 연극인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과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무대에서 치열하게 노력했다. 지금 한국연극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극장 밖의 현실에 시선을 겨누고 있다. 섣부르게 희망과 위로를 말할 수 없는 시대, 한국연극은 우리 사회의 이 반복되는 불행과 불의, 왜곡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새로운 공적 장소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이경미 연극평론가ㆍ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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