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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여권 ‘여소야대 뒤집기’ 유혹 떨쳐내라

입력
2016.04.18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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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960년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3·15 부정선거에 항거한 4ㆍ19혁명 56주년이다. 4ㆍ19를 전후로 치러지는 총선거는 그래서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선거는 대의민주주의의 수단이다. 민주주의에서 대표성과 책임성이 따르지 않으면 허울뿐인 민주주의일 수밖에 없다. 비록 절차적 민주주의가 성립된다 해도 실질적 차원의 민주주의는 대표성의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선거는 집권세력에 대한 심판과 평가의 회고적 투표의 성격을 갖는다. 물론 미래권력을 선택하는 전망적 투표의 의미도 아울러 갖는다. 총선은 평가, 대선은 미래지향적 선택이라곤 하지만 어떤 선거가 됐던 양면성을 동시에 갖는다.

박근혜 정권 출범 이후 실시된 재보궐 선거는 야당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선거환경에도 불구하고 항상 집권당의 승리로 귀결됐다. 이번 선거는 보수성향의 60세 이상 인구의 증가와 세대투표 및 야권의 분열이라는 선거구도 때문에, 여당의 과반획득과 야당의 참패에 대한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민심은 집단지성의 절묘한 균형감각으로 여소야대의 분점정부(divided government) 체제를 이루어냈다. 분점정부가 의회권력의 강화를 가져오고 행정부에 대한 적절한 견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점의 대척에는 국정의 마비와 교착을 불러 올 수 있다는 이론적 접근도 있다.

집권세력들은 여소야대를 여대야소로 전환시키기 위한 정계개편 유혹을 느끼기 마련이다. 민주화 이후 짧은 정당사는 여소야대 정국의 무리한 변경이 대통령의 레임덕을 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립된 이후 처음 실시된 1988년 13대 총선 결과 한국정당체제 사상 최초로 여소야대 정국이 형성됐다. 그러나 1990년 1월 3당 합당은 새누리당의 전신인 거대여당 민주자유당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합당 전 집권당이자 원내1당인 민주정의당의 의석은 125석이었다. 이후 치러진 14, 15, 16대 총선거는 모두 여소야대 국회였다. 그러나 집권세력은 합당, 의원영입, 의원꿔주기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정계개편을 시도했다. 여당의 의석 확대로 집권 측의 국정 장악력을 높이려는 정치공학적 접근은 민의의 왜곡이다.

행정부 권력과 입법부 권력의 이원적 정통성에 입각한 분점정부를 효율적으로 운영해 나간다면 여소야대는 여권에게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물론 당청 관계의 변화는 물론 권력내부의 소통구조가 바뀔 때 가능한 얘기다. 국면전환을 위한 내각과 청와대의 개편 등은 그 다음이다.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와 방식의 일대 혁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레임덕은 가속화될 수 있다. 민주화 이후의 대통령들이 겪었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선거에 나타난 민심을 냉정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새누리당 참패의 직접적 원인은 원칙과 기준도 없이 최고 권력의 의중에 충실했던 무분별한 공천 파동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에서 비롯된 집권세력의 오만과 독선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 이번 선거의 본질이다. 민심은 집권세력에 엄중한 심판을 내렸다. 그럼에도 선거 다음 날의 청와대의 두 줄짜리 짤막한 논평에서 민의에 대한 정확한 독해는 찾을 수 없다.

당나라 정관정요(貞觀政要)에서 위징(魏徵)이 말한 ‘수능재주 역능복주’(水能載舟 亦能覆舟, 민심의 바다는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전복시킬 수도 있다)라는 문구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항과 맞물려 있다. 새누리당은 탈당 무소속 당선자들의 복당을 추진하고 있다. 청와대의 선거 다음 날의 난독(難讀)에 가까운 무성의한 논평과 무소속 당선자의 복당 추진은 동전의 양면이다. 집권 측의 선거 결과에 대한 오불관언(吾不關焉)적 태도는 주권자를 ‘통치’의 객체로 인식하지 않고는 납득되지 않는 몰정치의 전형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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