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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무효표와 투표 스트레스

입력
2016.04.1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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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능 시험에서 흔히 범하는 실수 하나. 조심 조심하는 데도 문제 푸는 데 정신을 쏟다 답안용지인 OMR카드를 한 칸씩 내려 쓰거나 당겨 쓰는 경우다. 한 두 곳이면 수정이라도 하지만 무더기로 밀려 쓰면 OMR카드를 다시 받아 작성하는 곤욕을 치른다. 이마저도 밀려 쓰는 실수를 또 하기도 한다. 촉박한 시간에 긴장이 고조된 탓이다. 선거 투표에서도 유권자의 긴장과 연관된 무효표가 적지 않은 모양이다. 4ㆍ13총선도 예외가 아니리라.

▦별 것 아닌 듯 하지만 투표 행위 자체가 큰 스트레스다. 긴장도가 평소보다 세 배쯤 높아진다는 이스라엘 한 대학의 연구 결과도 있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Cortisol) 수치가 투표소 10m 앞에서 3배 정도 치솟는다는 것이다. 코르티솔은 긴장, 공포, 고통에 반응해 분비되는 부신피질 호르몬이다. 이번 총선에서 한 인터넷 카페가 선거 당일 투표 스트레스 여론조사를 해보니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사람이 그렇지 않다는 사람보다 2배 이상 많았다.

▦그러니 투표 전후로 매사에 유권자의 신경이 예민해진다. 특히 투표 도장의 잉크가 번지더라는 불만이 많았다. 무효표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하소연이다. 선관위는 바로 마른다고 하지만 잉크가 번진 인증샷을 인터넷에 올린 유권자도 있다. 1,000표 차 이내 초접전이 많았던 이번 총선에서 무효표가 당락에 영향을 미친 곳이 적지 않다. 1, 2위 표차보다 무효표가 더 많았던 선거구가 무려 19곳이다. 1, 2위 격차가 26표 난 인천 부평갑의 무효표는 60배에 육박하는 1422표다. 선관위가 무효표 분석과 함께 적극적인 방지 대책이 필요하겠다.

▦물론 무더기 무효표가 긴장에 따른 실수만은 아닐 것이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노령인구 증가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반면 대놓고 후보자들 사이 경계선에 도장을 찍은 유권자도 있다. 찍을 만한 후보도 없는데 권리를 행사해야 하니 짜증이 난다는 의사표시다. 가장 큰 투표 스트레스일 터이다. 여기다가 기껏 찍은 후보자가 당선됐지만 선거사범으로 검찰 조사를 받는 지경이면 신성한 한 표가 무효표 만도 못한 꼴이 될 수 있다. 지역구 당선자 253명 중 98명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고 하니 유권자의 투표 후 스트레스도 올라가게 됐다.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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