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외교문서 공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1985년 참사관 신분으로 미국 하버드대에 연수하던 당시 망명 중이던 김대중(DJ) 전 대통령 관련 동향을 수집해 공관에 보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2ㆍ12 총선을 앞두고 DJ가 귀국을 선언하자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는 한편, 그의 귀국 문제를 두고 미국 레이건 행정부와 신경전을 벌였다. 전두환 대통령은 DJ 귀국시 재수감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다가 미국 정부가 전 대통령의 방미 계획 발표를 보류하며 압박하자 가택 연금 조치로 바꾼 정황도 드러났다.
외교부가 17일 공개한 1985년도 외교문서에는 당시 정국의 핵심이었던 ‘DJ 귀국’ 문제가 한미간 중요 현안으로 다뤄져 있다. DJ는 2ㆍ12 총선을 앞두고 귀국을 선언했으나 그의 암살 우려까지 제기돼 국제 문제로 부각됐다. 당시 하버드대 교수를 중심으로 ‘김대중 안전 귀국 보장 캠페인’이 결성돼 DJ의 무사 귀환을 촉구하는 편지를 전 대통령에게 보냈다. 미국의 저명한 학계 및 법조계 인사 135명이 이 서한에 서명했다. 이 편지 발송에 앞서 관련 동향을 하버드대에서 연수하던 반기문 참사관이 주미 한국대사관에 알렸고, 유병현 주미 대사가 1월 8일 ‘김대중 동정’이란 제목으로 반 참사관의 보고 내용을 본국에 보고했다.
미국 정부는 이 같은 자국 내 여론을 의식해 한국 정부에 DJ의 사면 등을 요구하며 중재 역할을 했으나 전 대통령이 DJ 재수감 방침을 고수해 마찰을 빚었다. 이에 미국 정부는 전 대통령의 방미 계획 발표를 연기하며 맞섰다. 클리브랜드 주한 미 공사는 1월 23일 외무 차관 면담에서 “워싱턴의 반응이 매우 강경하여 태평양계획(전 대통령 방미계획) 발표를 다소 연기하는 문제도 검토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레이건 대통령이 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결국 이원경 외무장관은 1월 24일 리커드 워커 주한 미 대사를 만나 “그의 귀국과 관련해 레이건 행정부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고, 워커 대사는 “재수감을 하지 않고, 가택연금 같은 것을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되는데”라며 “이런 기쁜 소식을 주셨으니 빨리 본국 정부에 보고 드리겠다”고 답했다. 결국 DJ는 총선 직전인 2월 8일 귀국해 동교동 자택에 연금됐으나 12일 치러진 총선에서 신한민주당이 30%에 육박하는 득표율을 올려 민주화 운동의 전기를 마련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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