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가치를 아는 것이 늙음 뿐이듯, 낡음의 아름다움도 늘 새 것에게만 포착된다. 서울 한복판, 보존과 복원이란 단어에서 소외된 거의 유일한 동네 익선동이 최근 변화의 중심에 놓였다. 감각적인 인테리어를 내세운 카페와 펍, 레스토랑, 공방이 100년 묵은 한옥 옆, 혹은 그 한옥을 리모델링해 들어서고 있다. 변화의 진원지는 공간기획자 박한아, 아트디렉터 박지현이 오래된 한옥을 고쳐 문을 연 익동다방이다. 2014년 여름 처음 익선동 골목에 발을 디딘 이들의 눈에 다 쓰러져가는 이 골목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고 한다.
1930년대 그대로, 낡음이 아름다움이 되다
“익선동은 1920, 30년대 조성된 한옥단지가 지금까지 이어진 유일한 동네예요. 주민들이 땜질하듯 조금씩 개보수한 것 외엔 장독 놓는 터라든지 실외 화장실 같은 근대식 생활 시스템이 그대로 남아 있어요.” (박한아)
낙원상가 뒤편 실핏줄처럼 좁은 골목으로 연결된 익선동은, 구석구석 낡은 종로에서도 가장 낡은 동네에 속한다. 오래 돼 비가 새는 지붕은 방수천으로 대충 덮어 묶었고, 담장 에 보안용으로 박아 놓은 철심들은 녹이 잔뜩 슬어 건드리기만 해도 부서질 것 같다. “주인이 아닌 세입자들이 사는 집이 대부분이에요. 여기가 2004년에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됐거든요. 언제 동네를 쓸어버릴지 모르니 주인들은 집을 싸게 세놓고, 세 들어온 사람들은 아무리 불편해도 수리에 1,000원 한 장 들이기 아까워 참고 산 거죠.” (박한아)
두 사람은 인근의 정갈하게 복원된 한옥마을보다 늙고 지친 맨 얼굴의 익선동에 매료됐다. 이들을 움직인 건 단순히 흥미만은 아니다. 현재 재개발 지정 해지단계에 있지만 주거지역인 북촌, 서촌과 달리 익선동은 상업지구다. 누구나 들어와 기존의 한옥을 밀어버리고 가게를 열 수 있는 상황에서 동네가 어떻게 바뀔 지가 “눈에 훤히 보였다”고 한다.
“할머니 댁에 온 것 같은 느낌의 거리가 서울에 몇이나 남아 있겠어요. 흔치 않은 근현대 건축양식이 어떻게 망가질 지 너무 뻔하니까 안타까웠어요. 어차피 상업화될 곳이라면, 왜 이 거리가 지켜져야 하는지에 대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곳들이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박지현)
생각이 커지자 인원도 늘었다. 두 사람은 ‘익선다다’라는 팀을 만들어 거리 만들기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이사 갈 집들을 물색하고 매장을 기획해 운영자를 찾는 일이 시작됐다. 그 1호가 익동다방이다. 익선동 후미진 골목 중에서도 가장 후미진 곳에 자리한 수십 년 된 한옥이 낙점됐다. 마당을 합쳐 20평이 안 되는 이 집엔 모녀와 대형견 두 마리가 공사하기 얼마 전까지 10년 넘게 세 들어 살았다고 한다. 인근 한옥들과 마찬가지로 집 상태는 심각했다. 비가 새는 건 물론이고 흙벽이 기울어 자칫 붕괴할 위험도 있었다. 마당을 통해야 나갈 수 있는 부엌은 창고로 방치된 지 오래고, 화장실은 불도 안 켜지는 상태에서 수년 간 사용하고 있었다. “뜯어낸 벽지만 10겹”이란 말에 더 이상의 질문이 필요 없었다.
열기가 식은 후…”익선동은 익선동으로 남을 수 있을까요?”
두 사람은 건축가나 시공사 없이 직접 리모델링을 하기로 했다. 첫째 이유는 “돈이 없어서”였다. “인테리어 업체에 맡기자니 돈도 부담스러웠지만, 저(박현아)는 공간기획자로 공사 경험이 있고 박지현씨도 공간 디자인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끼리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나중에야 불필요한 자신감이었다는 걸 알았죠.(웃음)”
리모델링의 핵심은 ‘보존’으로 잡았다. 처음 두 사람이 반했던 동네의 낡음을 최대한 해치지 않기 위해 외부 골조는 그대로 두고 인테리어에 집중했다. 미닫이 문으로 분리돼 있던 내부를 시원하게 트고 창고로 쓰이던 부엌 벽에 큰 유리를 달아 오픈 키친으로 쓸 수 있게 했다. 마당 장독대를 둘러싼 돌담은 공사 내내 위태위태하다가 결국 일부가 무너져 내렸지만 치우지 않고 그대로 뒀다. 허물어지다 만 돌담은 제법 운치 있는 야외 장식이 됐다.
서까래를 가린 천장을 뜯을 땐 특히 긴장했다. 서까래가 부러져 있기라도 하면 공사 비용이 대폭 올라가기 때문이다. 다행히 목재는 멀쩡했지만 안을 채운 흙이 몽땅 썩어서 새 걸로 바꾸고 하얗게 회칠해 마감했다. 결국 바꾼 것은 너무 낡아 쓸 수 없게 된 문뿐이다.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지만 신축하지 않았다는 가정 하에 이 집도 1920, 30년대에 지어졌을 거예요. 당시 유행했던 한옥 창호 디자인을 조사해서 그걸로 바꿔 넣었어요.” (박지현)
익동다방에서 출발한 익선다다의 프로젝트는 지난 1년 간 햄버그스테이크를 파는 ‘경양식 1920’, 수제햄과 수제맥주 등 수제 음식 매장 7개가 모인 ‘열두달’, 연탄불에 쥐포와 먹태를 구워주는 슈퍼마켓 ‘거북이슈퍼’ 등으로 확대됐다. 트렌디하면서 동네의 노후함과도 충돌하지 않는 이 매장들은 금세 입소문을 탔고, 익선동은 가로수길-경리단길-서촌을 잇는 젊은이들의 거리로 부상했다.
“동네가 바뀐 것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걱정을 해요. 젠트리피케이션(구도심이 번성하면서 임대료가 올라 원주민이 쫓겨나는 현상)이 아니냐는 거죠. 그런데 익선동은 성격이 좀 달라요. 여기서 태어나 터를 잡고 산 게 아니라 집세 때문에 내몰리듯이 온 사람들이 많고, 우린 나가기로 한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 최대한 그곳을 보존하며 재미있는 걸 해보려는 거예요. 오히려 젠트리피케이션의 첫 피해자가 생긴다면 우리가 되겠죠.” (박한아)
지금 두 사람이 생각하는 건 수년 후의 익선동이다. 이들은 동네가 번화함에 따라 닥쳐올 일들에 담담하게 대처하려고 한다. “거리에 변화를 일으켰다고 해서 이 거리가 우리 것은 아니에요. 임대료가 오르고 대기업이 들어오면 그건 막을 수 없는 일이죠. 다만 그 전에 거리의 정체성을 다지고 싶어요. 가령 테일러숍이 들어온다면 전면 유리를 내기 위해 담벼락을 무너뜨리는 대신 손바닥만한 쇼윈도를 만들어 나비넥타이만 진열하는 거죠. ‘여기선 그런 식의 매장도 가능하다’는 걸 증명하면 나중에 대기업이 들어와도 이곳이 보존될 수 있지 않을까요?” (박한아)
열기는 식고 유행은 바뀐다. 익선동은 그 후에도 익선동으로 남을 수 있을까. 익선다다의 올해 프로젝트는 여기에 집중될 예정이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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