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스완’ 총선, 국민의당 돋보여
후보단일화 요구는 민심 오독 결과
대중심리는 섣부른 예측 너머 있어
4ㆍ13총선 결과를 놓고 저마다 한마디씩 한다. 보수든 진보든 뜻밖이라거나 충격적이라는 게 공통된 반응이다. 청와대도 황망함의 또 다른 표현인지 참담한 결과치고는 두 줄짜리 반응이 무미건조하다. 선거전부터 줄곧 국회 심판론, 내심으론 정부 정책에 발목만 잡는 야당 심판론을 제기하던 대통령은 말이 없다. 국회선진화법 무력화 선인 180석, 나아가 개헌 선까지 기대했던 여당의 의석수는 과반도 아니고, 원내 제2당의 결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를 눈여겨본 사람이면 80, 90석 획득 정도로 봤던 제1야당은 원내 1당으로 우뚝 섰다. 급조된 신생정당은 원내교섭단체 기준 의석수의 두 배에 육박하는 당선자를 내고 당당히 3당 체제의 캐스팅보트를 쥐게 됐다. 투표 전부터 호남 쪽 분위기가 심상찮게 여겨졌지만 원내 제1당보다 비례대표 득표를 더 얻게 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런 결과를 일컬어 ‘블랙 스완’(Black Swan), 검은 백조 현상이라 한다. 미국 월가의 전문가가 2008년 서브프라임 금융위기를 설명한 용어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생겼다’는 뜻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일반적인 기대 영역에서 벗어난 관측 값이 나오는 일로 극심한 충격을 동반하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기존의 정치구도, 정치체제는 물론이고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마저 송두리째 흔들리게 됐으니 총선 결과와 충격을 설명하는 용어로서도 손색이 없다.
블랙 스완이 된 이번 총선을 통해 드러난 바는 민심의 무서움만이 아니라 민심을 감히 예측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 예측이란 게 대중의 심리에 대한 깊은 통찰에서 비롯되기보다 대개 표면적이면서도 기계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데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기대 영역, 수준에서 벗어난 예가 야권연대, 후보 단일화 없이 이뤄낸 야권의 승리라 할 수 있다. 야권 연대 없이 치러진 이번 선거는 1_1이 2가 되는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기계적인 계산대로라면 1+1=2가 돼야 하지만 과거의 예를 보면 1+1이 1보다 못한 선거 결과가 드물지 않다. 여당이 질 수 없는 승부라고 본 이번 총선과 달리 앞선 19대 총선은 이명박 정부 막바지에 치러져 야권이 질 수 없는 게임으로 여겼다. MB정부의 실정과 야권 연대, 후보단일화로 참패가 예상됐던 여당은 오히려 과반 의석 확보라는 결과를 얻었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간의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경선 잡음과 여론조사 조작은 선거공학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인 이미지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이번 총선에서 야권은 물론 재야에서도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시대의 소명’이라며 야권연대, 후보 단일화를 요구한 반면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단일화는 없다”는 요지부동 자세를 취했다. 일부 진보진영에서는 새누리당 압승을 안기며 천하의, 역사의 대역죄인이 될 것인 양 안 대표를 몰아붙였으니 매우 머쓱할 만하다. 당 내부적으로도 파탄 직전까지 가는 정치적 위기를 겪었다.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안팎에서 죄여오는 정치적 압력을 견뎌내기는 쉽지 않을 터이다. 숱한 후퇴와 양보로 ‘철수 정치’라는 비아냥을 듣는 안 대표가 정치생명을 건 승부수로 블랙 스완을 만들어낸 이번 총선은 정치 인생에서 중대한 변곡점이 될 게 분명하다. 예측불허의 상황에서 민심이 요구하는 바에 대한 자신의 판단에 더 확신을 갖게 될 것이고, 이제는 당이나 주변에서도 안 대표의 소신, 판단에 도리 없이 한 수 접고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 새누리당 참패에는 내적으로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민심을 들여다볼 생각조차 하지 않은데 있지 않나 싶다. 안 대표의 후보 단일화 반대에 대해 새정치 응원 메시지를 보내는 코미디도 따지고 보면 민심에 대한 예측 오류라 할 것이다. 보복공천이 민심이반의 결정적 요인이 됐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는데 당시 “공천이 다 그런 것 아니냐”는 새누리당 고위당직자 말 속에는 민심에 대한 고려를 찾아볼 수 없다. 그게 흔히 말하듯이 오만이다. 민심은 예측의 영역 너머에 있다.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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