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13 총선 당일 베이징에서 생활하는 대기업 주재원 2명과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자연스럽게 총선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이들 모두 새누리당의 참패가 예상된 출구조사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두 사람 다 재외국민투표에 참여했다는데, 한 사람은 “정말 오랜만에 투표하길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총선 이후 우리 사회는 많은 부분에서 크고 작은 변화가 불가피하다. 당장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야당의 협조 없이는 국정을 제대로 끌고 가기 어려워졌다. 덩치가 커진 야당도 내년 대선을 겨냥한다면 대안ㆍ수권정당의 면모를 보여야 한다. 그런 만큼 대화ㆍ타협의 정치가 필수적일 수밖에 없게 됐다. 어느 당을 지지했는지와 무관하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싸우지 않는 정치, 한발씩 양보하는 정치를 바랄 것이다.
특히 외교ㆍ안보분야는 이른바 ‘초당적’ 협력이 절실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의 한반도 배치 문제를 두고 벌어지는 미국과 중국의 신경전은 우리에게 큰 부담이다. 한일 정부 사이의 군 위안부 합의 내용과 이행 문제도 상당한 난제다. 정치권이 극단적으로 나뉘어 갈등하면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입지는 극도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민감한 현안이 일방적으로 혹은 정치적 해석을 낳으며 추진될 경우 그 후과는 말로 다하기 어렵다. 남북간 경제협력의 마지막 끈이었던 개성공단의 전격 폐쇄, 한미간 사드 배치 협의 전격 공식화 등이 단적인 예다. 최근 총선을 앞두고 일각에서 ‘북풍’(北風) 논란으로까지 번졌던 중국 내 북한식당 종업원들의 집단탈출 사건도 마찬가지다.
실제 베이징 외교가에선 “한국 대사관 실무진들이 중국 측 카운터 파트너들로부터 항의를 받았다”거나 “실무진 차원의 대화 창구가 닫혔다”는 등의 소문이 무성하다. 사드 논란의 경우 양국 수교 이후 최고라던 한중관계에 찬물을 끼얹었고, 집단탈출 사건은 향후 탈북자들의 거취 문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한 외교관은 “뭘 알아야 설명을 하든지 해명을 할 것 아니냐”며 답답해했다. 물론 그가 소문을 확인해준 것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상황 자체는 미뤄 짐작할 만했다.
경제분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20%대 중반에 달하는 상황에서 중국 경제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우리 경제는 중병을 앓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중국이 아니라 우리 내부다. 조선업을 비롯해 구조조정이 절실하다는 진단을 받은 업종이 적지 않고, 청년실업은 이미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된 지 오래다.
우리가 먼저 경제 체질을 바꾸지 않으면 중국이 기침을 할 때 튀는 침 한 방울이 우리에겐 치사량이 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사회안전망이 절대 부족한 우리 상황을 감안하면 관련법 제ㆍ개정을 포함한 정치권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소 기대를 갖는 건 여야간 협치(協治)의 여건은 마련됐다는 점이다. 새누리당의 경우 이전처럼 ‘청와대 2중대’를 자처하며 일방통행식으로 국회를 운영하기 어려워졌다. 더불어민주당은 제1당이 됐다지만 국민의당의 협조 내지는 새누리당과의 타협이 필수적이다. 국민의당이 행사할 캐스팅보트는 대화와 타협이 전제가 될 수밖에 없다.
남은 건 역시나 청와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박근혜 대통령이다. 총선 직후 만난 주재원 2명은 모두 2012년 대선에서 박 대통령에게 투표했다고 한다. 이들이 이번 총선 결과에 반색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는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 국내 정치가 대화ㆍ타협이라는 의회주의의 본령으로 돌아가려면 박 대통령이 자신의 국정운영 스타일에 붙은 ‘독선’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야 한다. 그래야 초당적 협력을 통해 외교력을 높일 수 있고, 경제 재도약도 가능하다.
양정대ㆍ베이징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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