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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제5원소] 4ㆍ13과 4ㆍ16

입력
2016.04.15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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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다.”

지난 4ㆍ13 총선 결과의 윤곽이 드러나자 새누리당의 원유철 원내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새누리당은 이번 총선에서 제1당의 자리를 내주고 제2당으로 주저앉았다. 선거 기간 내내 새누리당이 과반의석을 유지하리라는 예상은 일종의 상식이었다. 제1당의 위치가 위협받으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새누리당=제1당’은 기본 전제와 마찬가지였다.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던 것은 새누리당의 원내대표뿐이 아니었다. 공중파 방송3사의 출구조사 발표에서도 새누리당은 (오차가 있긴 했지만)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하는 것으로 예측되었다. 오만한 권력을 준엄하게 심판한 민심의 위대함에 새삼 경외심마저 느껴지는 선거였으나, “이렇게까지 될 줄” 아무도 몰랐다는 점은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합리적 예측은 과학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예측이 있어야 과학이론을 검증할 방향이 정해지고 수단이 생긴다. 과학이론은 끝없는 검증을 통한 피드백으로 완성도를 높여간다. 마치 알파고가 강화학습을 통해 자신의 인공신경망을 끊임없이 개선해 나가는 것과도 같다. 21세기 과학문명의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나는 문명과 야만을 가르는 결정적인 기준 가운데 하나가 합리적 예측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기준에서 보자면 4ㆍ13 총선은 대단히 야만적인 조건 속에서 치러진 선거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부실한 여론조사방식과 이를 종용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크다. 지금의 여론조사는 집 전화 임의걸기방식(RDD)에 인구비례 가중치를 결합한 방식이라 응답률과 정확도에 문제가 많다. 선관위는 다른 가중치로 보정하는 방식에는 제재를 가하고 있다. 뿐더러 투표 직전 여론조사 결과의 공표나 보도를 금지하는 것은 유권자의 알권리를 제한해 합리적인 판단과 예측을 가로막는다.

여론조사가 진실을 반영하지 못한 데에는 진실을 말했을 때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작용했을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등장 이후 시대가 권위주의적인 1970년대로 회귀했다는 푸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테러방지법이 통과돼 국민의 사생활을 국가기관이 임의로 들여다볼 수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높다. 집권당 원내대표조차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던 것은 국민의 눈과 귀와 입을 틀어막고 민주주의를 제한한 업보가 아닐까.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사회가 투명해지고 은폐되는 진실이 줄어든다. 이런 조건 속에서라야 합리적인 예측이 가능하다. 그것이 문명사회이다.

선거결과 예측이야 틀려도 그만이고 잠깐의 혼란만 감수하면 될 일이지만, 우리는 이 문제가 단지 선거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님을 잘 안다.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다”는 말이 전혀 낯설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16일로 2주기가 되는 21세기 대한민국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 세월호 참사는 합리적 예측이 붕괴된 우리의 야만성이 그대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선박의 안전성에 대한 예측도, 사고 때 구조 시스템의 작동에 대한 예측도 모두 진실과 달랐다. 진실을 반영하지 않은 예측을 믿은 국민은 차가운 바닷물에서 나오지 못했다. 야만의 진실을 만천하에 드러내야 정확한 예측과 대비가 가능할 터인데, 오히려 감추고 숨기고 윽박질러 침묵시키는 데에만 급급했던 게 우리의 모습이었다. 사후처리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월호 진상규명은 박근혜 정권의 19대 국회에서는 별다른 진전도 없었다. 더 많은 민주주의는 더 과학적인 분석과 예측의 필수조건이다. 민주주의와 과학과 문명은 함께 간다.

4ㆍ13총선은 지금껏 우리를 짓눌렀던 대한민국의 야만을 조롱한 위대한 선거였다. 그렇게 탄생한 20대 국회는 꼭 세월호의 진상부터 명명백백하게 밝혀주기 바란다. 나는 그것이 우리 사회가 문명사회로 진입하는 필수 전제조건이라 믿는다.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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