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던 4월 어느 날 오후, 전선 위에 앉아 있던 비둘기 한 마리가 서울역 광장으로 내려앉는다. 종종걸음을 치다 간밤에 내린 비로 물이 고여 있는 곳으로 급하게 날개를 퍼덕인다. 그 순간 카메라에 포착된 비둘기의 날갯짓은 찰나의 떨림으로 공작새가 깃털을 활짝 펴려고 하는 모습과도 겹친다. 어쩌면 이 비둘기는 미운오리 새끼가 백조를 동경했던 것처럼, 공작새를 보고 그 우아함을 흠모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에 잠겨 높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다 갑자기 목이 말랐나보다. 물웅덩이에 고개를 처박고 짧은 부리를 이용해 수분을 보충한다. 함께 전선 위에 앉아 있던 비둘기들도 목을 축이러 따라 내려온다. 광장을 바삐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에도 아랑곳 않은 채, 물웅덩이에 떨어져 나뒹구는 종이컵의 존재도 무시한 채, 그들은 그렇게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갈증을 푼다. 바야흐로 무념무상(無念無想)한 봄날의 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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