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직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호남을 향해 뽑았던 ‘배수진 카드’가 부메랑 효과를 낳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총선 막바지 두 차례 호남을 방문, “호남이 지지를 거둘 경우 정계를 은퇴하고 대선에 불출마하겠다”고 밝혔다. 호남민심을 되돌리기 위한 일종의 ‘벼랑 끝 전술’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민주가 호남에서 참패하자 그의 거취를 둘러싼 미묘한 흐름이 당 안팎에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더민주 관계자는 14일 “총선결과를 보면 호남 민심은 차기 대권후보로서 문 전 대표를 인정할 수 없다는 평가를 내린 게 아니냐”고 말했다. 실제로 호남에선 안호영(전북 완주ㆍ진안ㆍ무주ㆍ장수) 당선자를 제외하면, 문 전 대표가 지원유세에 나선 후보들이 전멸했기 때문이다. 김종인 더민주 대표 역시 이날 기자회견에서 “문 전 대표가 수도권에서 우리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데 큰 도움을 주셨다”고 평가했지만, 앞서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서는 “(문 전 대표의 방문이) 호남 민심을 달래는 데는 별로 효과가 없었다고 본다”고 그의 호남 배수진 전략의 실효성을 평가절하했다.
호남을 싹쓸이한 국민의당에선 당장 견제구가 들어왔다. 박지원(전남 목포) 당선자는 같은 방송에서 “(문 전 대표의 정계 은퇴 발언을) 국민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문 전 대표 측은 “수도권 압승과 영남 선전의 배경엔 문 전 대표의 지원이 있었다”면서 “호남 완패의 책임을 문 전 대표에게만 지울 수는 없다”고 말했다. 수도권과 영남의 선전을 바탕으로 123석을 획득, 원내 1당으로 부상한 배경에는 문 전 대표의 지원 효과가 컸던 만큼 ‘정상참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 전 대표도 이날 서울 홍은동 자택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호남의 패배가 아주 아프다”면서 “호남 민심이 저를 버린 것인지 더 겸허하게 노력하면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정계 은퇴보다 호남 민심회복에 무게를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김회경 기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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