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서 야당 후보 당선 이변
“지역주의 영향력 약화” 평가
국민의당 지지 호남에 국한 등
지역구도 완전 해소엔 갈 길 멀어
대선 앞두고 다시 기승 우려도
4ㆍ13 총선 결과에서 16년 만의 여소야대(與小野大) 재편만큼이나 주목해야 할 대목은 박정희 정부 이후 한국 정치의 고질적 폐해로 이어져온 온 영ㆍ호남 대결 구도에 일부 균열이 생겼다는 점이다. 지역이 아니라 세대ㆍ계층ㆍ이념성향 등에 따라 이해관계가 재편되면 정치의 역동성도 한층 높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다만 기득권을 누려온 기성 정당들이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예상되는 정계개편 과정에서 지역주의에 기대 정치적 이익을 챙기는 퇴행을 반복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20대 총선에서 지역주의의 영향력이 눈에 띄게 약화됐다고 평가했다. 특히 대구ㆍ경북(TK) 지역은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전국 정당화를 목표로 ‘동진정책’ 카드를 꺼내든 이후 단 한 차례도 당선자를 배출하지 못한 여당의 철옹성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영ㆍ호남 갈등 타파를 위해 지난 1998년 대통령 취임 이후 구(舊) 여권인 민정당 출신 김중권 전 의원을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발탁하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은 2000년 16대 총선에서 경북 울진ㆍ봉화에 출마했으나 16표 차이로 낙선했다. 이정희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역주의 벽을 계속 두드려서 깼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며 “호남에서 새누리당이 2석을 차지하고, 철옹성처럼 여겨졌던 대구에서 야당 후보가 당선된 것은 큰 변화임에 틀림 없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우리 정치에서 지역구도가 완전히 해소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특히 ‘새정치’를 앞세우며 호남을 석권한 국민의당이 다른 지역에서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게 가장 큰 한계로 지적됐다. 정치권 일각에서 국민의당이 결국은 ‘호남 자민련’이 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는 이유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새정치와 반대되는 구(舊)정치의 하나가 영ㆍ호남 지역주의를 기득권으로 삼는 정치”라며 “결과적으로 ‘국민의당=호남’이라는 등식이 성립한 것은 국민의당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더불어민주당이 PK(부산ㆍ경남)에서 8석을 차지할 수 있었던 데는 역설적으로 국민의당 등장으로 더민주가 더 이상 호남을 대표하는 정당이 아니라는 이미지가 작용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2017년 대선이 다가올수록 지역주의에 편승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새누리당으로서는 영남권 지지기반이 흔들리면서 적지 않은 정치적 타격을 입은 만큼 비판을 받더라도 기존의 지역기반 복구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더민주 또한 호남을 다시 끌어안기 위해 국민의당과 경쟁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당의 경우 당장 호남에 뿌리를 둔 정치세력과 새정치를 바라는 중도개혁 성향의 정치세력간 주도권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진단도 나온다. 윤종빈 교수는 “국민들의 바람은 결국 세대ㆍ지역ㆍ이념성향을 아우르는 정치를 하라는 것 아니겠냐”며 “하지만 국민의당의 균형추가 호남으로 가면서 정치개혁과 기득권 타파를 원하는 당내 중도세력과의 당내 권력투쟁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드러난 표심은 지역주의를 극복해야만이 대권에도 한발 더 다가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입을 모은다.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유권자들도 더 이상 지역주의를 가장 큰 문제로 보지 않고 있다”며 “정치권이 유권자들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한다면 이번 선거처럼 또다시 심판대에 오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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