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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유성기업 어용노조 설립은 무효”

입력
2016.04.1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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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성ㆍ독립성 확보하지 못해”

노조 무력화 움직임에 제동 기대

해고자 소송에 영향 줄지도 관심

회사 주도로 만들어진 어용노조의 설립은 무효라는 첫 법원 판결이 나왔다. 2011년 복수노조가 허용된 이래 일부 노조들이 회사 주도로 만들어진 친기업 노조로 지목되고 있어 비슷한 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부장 권혁중)는 금속노조가 유성기업 노조를 상대로 낸 노동조합설립무효확인 소송에서 “피고 노조가 설립 및 운영 면에서 회사로부터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유성기업 노조의 설립은 무효”라고 14일 판결했다. 금속노조는 민주노총 산하 산별 노조이고 유성기업 노조는 추가로 만들어진 기업별 노조다. 복수노조 사업장에서 노조가 다른 노조를 상대로 설립 무효 판결을 받아낸 것은 처음이다.

재판부는 유성기업 노조가 현행법상 설립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판단했다. 설립 자체가 회사 계획 및 주도 아래 이뤄진 데다 설립 이후 조합원 확보나 조직 홍보, 안정화 등 운영 역시 회사 계획 하에 이뤄지면서 회사에 대해 자주성ㆍ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과거 상당 기간 지속돼온 금속노조의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쟁의에 대응해 일부 근로자들이 새 노조 설립을 의도했다 해도, 회사가 설립부터 안정ㆍ세력화까지 주도적으로 개입한 피고 노조는 자주적 노조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현대자동차 부품납품업체인 유성기업의 제2 노조 설립은 사측이 준비한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된 사실이 재판에서 확인됐다. 유성기업은 근무 형태 변경을 놓고 금속노조 지회와 협상을 벌이다 쟁의가 발생하자 2011년 4월 ‘노조 와해’ 전문 노무법인으로 알려진 창조컨설팅과 자문 계약을 맺고 기존 노조를 허무는 작업에 착수했다. 창조컨설팅의 컨설팅 제안서엔 유성기업의 대응전략과 핵심과제로 ‘온건ㆍ합리적인 2노조 출범’과 ‘건전한 2노조 육성’이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같은 해 7월 유성기업 노조가 설립신고서에 첨부해 정부에 제출한 노조 규약도 회사가 작성해준 것이었다. 또 사측은 기업 노조가 임금교섭 대표 노조가 되도록 하려고 노동자들과 면담하면서 가입을 종용하기도 했다.

노동계는 이번 판결로 2011년 복수 노조 설립 허용 이후 사측이 어용노조를 세워 과반수 노조로 만드는 방식으로 기존 노조를 고립ㆍ무력화시켜 온 움직임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금속노조 측 소송대리인인 김상은 변호사는 “창조컨설팅이 유성기업과 비슷한 시기에 현대차 협력업체들인 발레오전장, 상신브레이크, 보쉬전장 등에 만든 2노조들을 무효화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아울러 유성기업 해고자 11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소송에도 이번 판결이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조합원인 한모(42)씨의 자살을 계기로 결성된 유성기업범시민대책위원회는 “유성기업지회 조합원들이 어용노조에 맞서 싸우다가 회사로부터 받은 해고ㆍ징계 조치 역시 모두 무효일 수밖에 없음이 입증됐다”고 주장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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