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롱뇽 소송 사건으로 유명한 경남 양산의 천성산에 최근 산책로인 누리길이 완성되었다. 이처럼 전국 곳곳에 자연과 더불어 걷는 길들이 앞다퉈 만들어지고 있는데, 누리길처럼 대부분 이름들이 토속어의 멋을 담고 있다.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남해 바랫길, 태안 노을길, 강릉 바우길 등이 다 그렇다.
필자가 사는 창원에서 멀지 않은 창녕 남지에는 개비리길이 있다. 낙동강을 따라 이어지는 좁은 벼랑길이다. 갯벌 즉 개의 비리(벼랑의 방언)에서 온 이름일 수 있지만 사람들은 개가 다닌 벼랑길이라는 어원 풀이를 더 좋아한다. 여기에는 작은 전설 하나가 깃들어 있다. 황씨 할아버지네 어미 개가 낳은 새끼 중 유난히 약한 놈이 있어 시집간 딸이 데려갔다. 그러자 어미 개가 매일 찾아와 젖을 먹였는데, 통행이 끊긴 폭설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눈이 드문 벼랑 면의 좁은 길로 다닌 것이었는데, 이를 안 사람들이 이 길을 ‘개비리길’로 불렀다는 것이다.
남해안의 통영에는 ‘토영 이야길’이 있다. ‘토영’은 통영, ‘이야’는 가까운 언니, 누나를 허물없이 부를 때 쓰는 이 지역 방언이다. 그러니 토영 이야길은 허물없는 사람들끼리 도란도란 함께 걷기 좋은 길이라는 뜻이다. 길목마다 재미난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만 같은 이름이다.
이런 이름들과는 전혀 딴판인 길 이름들도 있다. (청라)에메랄드로, (청라)크리스탈로, 아카데미로, 하모니로, 파인토피아로, 골든루트로, 사파이어로 등이 그것이다. 몇 해 전부터 신도시 중심으로 생겨나 쓰이고 있는 도로명들이다. 누리길, 개비리길, 올레길에 비하면 이런 외국풍의 이름은 무미건조한 느낌이 든다. 전설도, 이야기도 깃들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는 도심에도 정감 있는 이름들이 더 많이 생겨났으면 한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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