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salz) 성(burg)’이라는 뜻의 잘츠부르크는 우리의 도(道) 단위에 해당하는 잘츠부르크 주의 중심도시다. 소금 광산이 산재한 잘츠부르크 주는 남부지역으로 알프스 산자락과 연결돼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빙하수가 흘러내려 76개의 에메랄드 빛 호수가 형성된 잘츠캄머구트(salzkammergut) 지역은 그 중에서도 최고로 평가된다. 호수를 끼고 형성된 마을마다 그림 같은 풍경을 빚어 ‘좋다(gut)’라는 수식이 그저 붙은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
오스트리아의 봄은 한국보다 다소 늦은 듯했다. 잘츠부르크 시내에서 158번 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조금만 벗어나면 바로 농촌마을이다. 설산 아래 초록으로 뒤덮인 목초지를 끼고 있는 마을 풍경이 한없이 평화롭다. 조금 있으면 꽃가루에 창문이 노래질 정도로 민들레를 비롯한 봄 꽃들이 온 천지를 덮을 거란다.
이런 풍경을 한 시간여 달려 도착한 곳은 깎아지른 절벽아래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호수마을 할슈타트. ‘할(Hall)’은 켈트어로 ‘흰 소금’이란 뜻이라니, 이 곳도 소금광산으로 형성된 마을이다. 1734년에 소금에 절여져 완전하게 보존된 시신이 발견됐는데 알고 보니 3,000년도 넘었더라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뒷산 꼭대기 소금광산은 4월말부터 개방하기 때문에 볼 수 없었지만, 아기자기한 마을을 한 바퀴 돌다 보면 누구나 동화 속을 거니는 듯한 기분에 빠져든다. 마치 주민 모두가 예술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주택외관을 꾸미고 장식하는데 신경을 쓴 모습이다. 특히 집 앞에 덩굴식물이 아닌 나무를 키워 담벼락을 장식한 모습은 공간과 평면의 경계를 허무는 비현실적 예술작품으로 보인다. 교회 첨탑이 데칼코마니를 이룬 수면 위로 백조가 유유히 노니는 모습도 한 폭의 그림이다. 분명 야생 조류일 텐데 호숫가에서 휴식을 취하는 여행객에게도 전혀 경계심이 없다.
이런 낭만적인 풍경에 사랑이야기 하나쯤 빠질 리 없다. 인근 바트이슐은 16세의 바이에른 공주 시시와 합스부르크 황태자 프란츠 요셉이 첫사랑에 빠지고, 비엔나의 귀족들이 여름 휴가지로 사랑 받던 곳이다.
돌아오는 길에는 볼프강 호수가의 스트로블 마을에서 장크트길겐 마을까지 유람선을 탔다. 성인 볼프강의 이름을 딴 호수 인근 샤프베르크(1783m)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풍경이다. 인근 5개 호수가 한눈에 들어오는 정상까지는 볼프강 마을에서 톱니바퀴 열차가 4월말부터 관광객을 실어 나른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가파른 철도 구간으로 꼽힌다.
유람선이 도착한 장크트길겐에도 모차르트의 흔적이 남아있다. 어머니 안나 마리아와 유일하게 살아남은 누나 난널(Nannerl)이 살던 집 정면에는 두 모녀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마을에는 안나 마리아가 어린 모차르트가 연주회를 갈 때마다 만들었다는 ‘모차르트 케이크’를 판매하는 카페와 그의 누이 난널의 이름을 딴 카페도 자리잡고 있다. 집집마다 외벽에 바로크 양식의 문양을 그려놓아 마을 자체도 예술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잘츠부르크 시내에서 멀리 않은 헬브룬 궁은 엄격함과는 담을 쌓은 놀이터다. 17세기 초 마르쿠스 시티쿠스 대주교가 오로지 즐기기 위해 건설한 여름 별장이다. 그래서 궁전 건물보다는 뜰을 돌아가며 설치한 트릭 분수가 유명하다. 석재의자에 앉았다가 갑자기 물줄기가 솟구쳐 놀라기도 하고, 사슴 뿔 조각 등 예기치 못한 곳에서 물이 뿜어져 나와 재미를 더한다. 400년 전에 이런 장난기 가득한 놀이시설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당시 사제들의 탐욕과 타락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만한 시설이기도 하다. 조각과 연못, 나무와 초지가 잘 어우러진 드넓은 정원도 쉬어가기에 그만이다.
레오폴츠크론에서도 쫓겨난 ‘사운드 오브 뮤직’의 유리팔각정은 아무 설명도 없이 정원 끝자락에 덜렁 놓여있다. 이곳에서도 그리 대접받지는 못하는 신세다.
북한산이 서울을 굽어보듯 잘츠부르크 인근에는 운터스베르크 산이 우뚝 솟아있다. 시내에서 보면 호엔잘츠부르크 요새 뒤편으로 보이는 산이다. 해발 1857m의 가파른 산이지만 케이블카로 10분 정도면 정상 부근까지 오른다. 산정에는 아직 눈이 쌓였는데, 초록으로 덮인 들판에서 멀리 잘츠부르크 시내까지 펼쳐지는 풍경이 시원하다. 반대편은 더 높은 알프스의 봉우리들이 한 겨울에 머물러 있어 경계에 선 두 계절이 선명하게 대조된다.
정상은 독일과 국경이어서 발 아래 풍경의 절반은 독일 땅이다.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폰트랍 가족이 산을 타고 스위스로 넘어가는 장면도 사실은 이곳에서 촬영했다. 이 세계적인 영화가 정작 본 고장에서는 크게 대접받지 못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듯 하다.
잘츠부르크(오스트리아)=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여행수첩]
●잘츠부르크는 작은 도시다. 한국에서 바로 가는 비행편이 없다. 터키항공을 이용해 이스탄불을 경유하면 환승이 편리하다. 인천~이스탄불은 약 11시간, 이스탄불~잘츠부르크는 2시간 30분이 걸린다. ●잘츠부르크 시내와 근교 여행을 할 때는 ‘잘츠부르크 카드’를 구입하면 편리하고 경제적이다. 일단 대중교통이 무료다. 구 시가지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필요가 거의 없지만, 묀히스베르크 산과 호헨잘츠부르크 요새를 오를 때는 리프트나 전동열차를 타야 한다. 운터스베르크 산 케이블카, 헬브룬 궁, 잘차흐강 크루즈 등 놀이시설과 모차르트 생가, 잘츠부르크 박물관 등 도심의 거의 모든 전시장도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카드는 24시간(24유로), 48시간(32유로), 72시간(37유로)권 등 3종류. 5~10월 사이에는 3~5유로가 추가된다. ●잘츠부르크 여행가이드 홈페이지(salzburg.info)에서 시티투어와 공연 등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영어와 독일어 등 11개 언어로 서비스하는데 아직 한국어는 포함돼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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