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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조할매급' 부산 초량시장, "살아있네~"

입력
2016.04.13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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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량시장 입구. 부산역 역전시장인 초량시장은 곱게 나이 든 할머니 같은 시장이다.
초량시장 입구. 부산역 역전시장인 초량시장은 곱게 나이 든 할머니 같은 시장이다.

비빔당면 정구지전 돼지갈비… 싸고 넘치는 먹을거리

그 맛에 발목 잡혀 한 평생 빠져 나오지 못하는 이가 수두룩

한나절이고 하루고 미로에 갇히겠단 배짱으로 둘러봐야

초량시장은 역전시장이다. 부산역 앞에 있다. 역과 시장은 걸어서 10분 거리. 부산역에서 도로를 건너 오른쪽 국민은행 샛길로 들어가면 나온다. 시장이 생긴 역사는 꽤 오래된다. 아흔이 넘은 콩나물 할머니는 여기서 장사한 지 60년이 넘었다 그러고 부산의 어제와 오늘을 담은 디지털 전자백과사전인 부산역사문화대전에는 일제강점기 보따리 상인이 하나둘 모이면서 시장이 들어섰다고 그런다.

“기차여행 온 젊은이가 많이 와요.” 전통에 빛나는 시장답게 초량시장에는 없는 게 없다. 특히 먹을거리가 넘친다. 먹을거리는 하나같이 싸다. 어묵 국수 순대 족발 찐빵 튀김 닭강정 등등 어떤 것은 두셋 시켜도 만원이 될까 말까다. 간이탁자 노점을 차려 비빔당면도 팔고 정구지전도 팔고 돈가스도 파는 아주머니는 기차여행 관광객이 자주 찾는다고 귀띔한다. 여기도 싸다. 당면 3,000원, 부추전 3,000원, 돈가스 5,000원이다.

초량돼지갈비 골목. 뜨내기손님 보다 단골이 많다. 나이 속여 드나들던 고교생이 중장년이 돼서도 드나든다. 갈비 맛에 발목 잡혀 한평생 골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가 수두룩하다.
초량돼지갈비 골목. 뜨내기손님 보다 단골이 많다. 나이 속여 드나들던 고교생이 중장년이 돼서도 드나든다. 갈비 맛에 발목 잡혀 한평생 골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가 수두룩하다.
초량시장 노점 분식집 메뉴판. 하나같이 싸다. 기차여행 온 젊은 관광객이 단골이란다.
초량시장 노점 분식집 메뉴판. 하나같이 싸다. 기차여행 온 젊은 관광객이 단골이란다.

초량시장은 미로다. 길이 이리 갈리고 저리 갈린다. 들어가긴 쉬워도 들어간 길로 다시 나오긴 어렵다. 이 길인가 싶으면 다른 길이기 일쑤다. 그러기를 여러 번, 들어온 길 찾기를 단념할 때쯤 찾던 길이 ‘짠’ 나타난다. 그래서 초량시장에 들면 마음이 느긋해야 한다. 한나절이고 하루고 미로에 갇히겠다는 배짱으로 시장을 둘러봐야 한다. 한나절이니 하루는 약과다. 콩나물 할머니처럼 한평생 초량시장 미로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한둘 아니다.

초량시장은 돼지갈비 골목도 미로다. 열다섯이나 되는 갈빗집이 ‘나 잡아 봐라’ 요염을 부린다. 여기도 발을 들이면 좀체 빠져 나오지 못한다. 정확하게는 빠져 나오려고 하지 않는다. 근근이 빠져 나온 사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발을 들인다. 여기 손님은 뜨내기보다 단골이 훨씬 많다. 나이 속여 드나들던 고교생이 중장년이 돼서도 드나든다. 내 경우다. 여행 떠나 여기 왔다가 여기 오려고 여행 떠나는 사람이 적잖다. 내 친구 경우다. 이래저래 초량시장은 미로고 그 안에 들어 한평생 빠져 나오지 못하는 이가 수두룩하다.

초량시장 나이는 ‘증조할매’ 급이다. 아흔 넘은 할머니보다 지긋하다. 그렇지만 늙수그레한 할머니가 아니라 곱게 나이 든 할머니다. 옛 시장 정취는 고스란히 살리면서 지붕이며 바닥을 분지 곤지 찍듯 곱게 단장했다. 2015년 10월 야시장을 열면서 피부만 젊어진 게 아니라 마음까지 젊어졌다. 노점 비빔당면을 먹는 내 곁에 20대 초반 여성이 둘 앉더니 음식 사진을 가리키며 “이찌, 이찌, 이찌” 일본말을 한다. 국수와 떡볶이와 튀김을 하나씩 달란 얘기다. 저 셋은 합치면 얼마가 되려나.

동길산 시인ㆍ부산관광공사 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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