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안에서 누군가가 한 집을 오래도록 지켜본다. 젊은 여성이 집에서 나와 차를 타고 이동하자 그 누군가는 미행하듯 여성을 쫓는다. 혹시 스토커? 이어지는 화면은 의혹을 배가시킨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진 여성의 사진을 누군가가 반복해서 유심히 본다. 그리고 다음 화면들은 그 누군가로 여겨지는 한 남자의 헌신적인 일상으로 채워진다. 남자는 왜 젊은 여성의 뒤를 쫓고 그녀의 삶을 궁금해하는가? 영화는 커다란 의문부호에 의지해 이야기를 전진시킨다.
영화 ‘크로닉’의 주인공 데이비드(팀 로스)는 시한부 환자를 돕는 호스피스다. 그의 간호는 직업적 행동을 넘어선다. 마치 가족처럼, 아니 가족보다 더 마음을 기울여 환자를 대한다. 오래도록 돌본 여인이 죽은 뒤 그는 술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며 20년을 살았던 아내가 최근 병으로 숨졌다고 말한다. 노년의 건축가 환자를 간호할 때는 밖에서 환자의 동생처럼 행동하고, 환자의 성적 욕망을 달래주기도 한다. 지나치게 친밀하게 대하다 환자를 성희롱했다는 고소까지 당한다. 그래도 그의 환자를 향한 애정은 쉬 식지 않는다. 또 다른 의문부호가 생기는 대목이다. 왜 그는 그토록 환자들에게 애착을 보이고, 환자를 떠나 보낸 뒤에는 그 환자를 금세 잊고 다른 환자에게 집중하는지, 그리고 이런 행동이 그가 몰래 쫓아다니는 젊은 여성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 영화는 의문부호를 합치며 관객의 궁금증을 더 키운다.
데이비드는 병마에 시달리다 숨을 거둔 아들이 있었다. 아들의 죽음으로 가족은 뿔뿔이 흩어진 듯하다. 데이비드가 멀리서 바라보는 젊은 여성은 오래 전 소식이 끊긴 그의 딸이다. 이 정도 정보면 데이비드가 왜 호스피스가 됐고, 그토록 열정적으로 환자를 치료하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아들의 죽음으로 망가져버린 데이비드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 회한인지, 죄책감인지, 단순한 집념인지, 가족 재결합이란 소원인지는 알 수 없다. 영화는 데이비드가 아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택했던 일이 무엇인지 암시하며 관객을 더욱 혼란 속으로 밀어 넣는다. 운동을 열심히 하고 위생에 각별히 신경 쓰는 데이비드의 생활 방식도 의문을 부른다. 환자들을 안전하게 오래도록 보호하고 싶은 욕망 때문인가, 아니면 환자들을 돌보며 생겨난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가?
영화는 느닷없는 비극으로 마무리된다. 남은 삶이 길지 않은 사람들을 정성껏 위로하던 한 인물이 맞이하는 어이없는 최후가 부조리하기만 하다. 어쩌면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호스피스도, 시한부 환자도, 가족도 아닌 삶의 불가해인지 모른다.
팀 로스의 빼어난 연기가 꼼꼼한 연출과 만나 빛을 더 발하는 영화다. 느린 호흡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면서도 긴장을 빚어내는 연출이 인상적이다. 멕시코 영화계의 새로운 별 미셸 프랑코 감독의 신작.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 14일 개봉, 15세 관람가.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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