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4월 12일
“우리는 젊고 무모하고 오만하고 유치하고 고집스러웠고, 또 옳았다(We were young, we were reckless, arrogant, silly, headstrong and we were right).” 애버트(애비) 호프만(Abbort Hoffman)은 저 문장을 만들면서, 모든 술어를 ‘또(and)’로 엮고는 아마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1960,70년대의 미국을 겁 없이 멋대로 산 그가 1989년 오늘(4월 12일) 숨졌다. 향년 52세.
그는 대안 사회를 꿈꾼 저항운동가였다. 대학시절 허버트 마르쿠제의 세례를 입어 신좌파로 분류되지만, 그는 사상을 떠나 반항아였다. 급진운동을 하면서도 히피들과도 어울렸고, 제리 루빈 등과 국제청년당 ‘이피스(YippiesㆍYoung International Party)’를 창당하기도 했다.
그와 이피스가 일으킨 파문은 한둘이 아니다. 67년 8월, 뉴욕증권거래소 관람석에서 진짜와 가짜를 섞은 지폐 뭉치를 뿌려 돈을 주우려는 거래인들로 난장판이 되게 한 일이 있었다. ‘주식놀이’를 비꼰 퍼포먼스였다. 그 직후 거래소는 2층 갤러리 난간을 방탄 유리로 막았다. 68년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장에 돼지를 끌고 가기도 했다. 돼지는 그 해 민주당 대선 후보를 조롱하기 위해 내세운 이피의 대선 후보였다. 호프만 등 주동자들에 대한 재판은 반전ㆍ반정부 시위를 방불케 했다. 71년 그는 돈 없이 사는 법 안내서라는 ‘이 책을 훔쳐라 Steal This Book’를 출간했다. 그의 책은 베스트셀러였지만, 제목을 따라 책을 훔쳐가는 이들이 하도 많아 그의 책을 취급하지 않는 서점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86년 11월 그와 몇몇 학생들은 매사추세츠 앰허스트대학 행정실을 점거했다. 학칙상 합법ㆍ준법기관만 교내 행사를 할 수 있는데, 대학본부가 준법기관이 아닌 CIA에게 교내 신입요원 채용행사를 하게 허락했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재판에서 그들은 전직 요원들까지 증인으로 소환, CIA가 니카라과 등 중남미에서 자행한 불법행위를 폭로했다.
사인은 수면제 과다복용이었다. 나이 든 자신이 싫고, 활력을 잃어버린 청년세대가 싫고,보수로 회귀한 그의 80년대도 견디기 힘들었으리라, 지인들은 여겼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