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췌도, 제1형 당뇨병환자 2~3명 이식 가능
각막 이식도… “이종이식 관련 법 및 사회적 동의 필요”
당뇨병 환자에게 돼지 췌도를 이식하는 이종(異種) 췌도이식이 빠르면 2018년 하반기께 국내에서 세계 최초로 이뤄질 전망이다. 박정규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 단장(서울대 의과대학 미생물학교실 교수)은 “최근 임상실험에 앞서 돼지에게서 췌도 이식을 받은 원숭이 8마리 중 5마리에서 최소 6개월 이상 생존해야 한다는 세계보건기구(WHO) 가이드라인을 유일하게 통과했다”면서 “2018년 후반기에는 적어도 2명의 1형 당뇨병환자에게 돼지 췌도 이식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기준 국내 제1형 당뇨병환자는 모두 10만8,901명이다. 박 단장의 설명대로 2018년 돼지 췌도 이식에 대한 임상연구가 성공한다면 이는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당뇨병 치료에 획기적인 전기가 될 전망이다.
영장류 시험서 안정성 확보… “사람만 남았다”
췌도는 췌장 안에 섬처럼 산재돼 있는 내분비세포 덩어리로 여기서 인슐린 호르몬이 분비된다. 인슐린은 체내 포도당 대사에 필수적이다. 인슐린이 태생적으로 크게 부족하면 제1형 당뇨병이, 인슐린 작용이 원활하지 않는 ‘인슐린 저항성’이 발생하면 제2형 당뇨병이 각각 발병한다.
췌도 이식은 제 기능을 잃은 장기를 대체함으로써 당뇨병의 완치를 도모할 수 있는 길이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 간, 사람과 동물 간의 췌도 이식에 대한 연구가 그동안 활발히 진행돼 왔다. 2000년 캐나다 앨버타 대학에서 7명의 제1형 당뇨환자에게 다른 사람의 췌도를 이식해 이들 환자들이 1년 간 인슐린주사를 맞지 않고 정상혈당을 유지했다는 논문이 발표되는 등 연구 성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하지만 당뇨병 환자에게 이식할 공여 장기가 부족하다는 것이 넘기 힘든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그래서 의학자들이 눈을 돌리게 된 것이 동물의 췌도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이종(異種) 간 췌도 이식이다.
우리나라는 이종 췌도이식 연구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이 본격적인 임상시험에 앞서 최근 진행한 영장류 실험에서는 영장류 5마리 모두 6개월 이상 정상혈당이 유지됐고, 이중 한 마리는 약 1,000일까지 정상혈당이 지속돼 세계 최장 기록을 경신했다. 또 사업단은 자체적으로 자가조절 T세포 기반의 면역억제 요법을 개발, 현재 영장류 5마리에 돼지 췌도를 이식한 후 인슐린 주사를 맞지 않아도 180~700일 이상 정상혈당을 유지토록 하는 성과도 거뒀다.
박 단장은 연구 진척 상황에 대해 “현재 돼지 췌도를 이식 받은 원숭이에게 사람에게 적용 가능한 면역억제제를 순차적으로 투여하고 있는데, 제일 먼저 면역억제제가 투여된 원숭이는 66일 동안 정상혈당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WHO의 권고대로 5마리가 60일 이상 정상혈당을 유지하면 본격적인 임상으로 넘어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세계 최초로 유전자변이 없이도 이종췌도 임상시험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종이식재 연구 분야
우리나라가 이종 췌도이식 연구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수준에 도달한 이유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무균미니돼지’를 공급원으로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사업단이 보유하고 있는 무균미니돼지는 40마리 정도로, 2004년 서울대 의대 동문인 미국 시카고 대학 김윤범 교수가 24마리를 기증한 것이 연구의 기폭제가 됐다.
서울대 의대 의생명특수자원동물센터에서 번식과 사육이 진행돼 지금까지 약 350여 마리가 췌도 및 각막 등 다양한 이종이식 연구에 사용됐다. 박 단장은 “서울대가 보유하고 있는 무균미니돼지는 세계이종이식학회가 권고하는 이종이식 공여동물 기준인 ‘DPF(Designated Pathogen-Free)’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여기에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잠복성 바이러스를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DPF는 사람에게 병을 일으킬 수 있는 세균과 바이러스가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종 각막이식도 준비 끝… 2018년께 현실화 될 듯
최근 중국에서 불꽃놀이 도중 사고로 우측 각막이 손상된 14세 소년이 돼지 각막 이식을 받아 시력이 회복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와 화제가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종 각막이식이 2018년께 현실화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국내 의학계가 돼지 각막을 이용한 이종 각막이식 연구에 매달리고 있는 이유는 환자 수요에 따라 대량 공급이 가능한데다, 돼지는 무균 환경에서 사육돼 각막의 질을 항상 최상으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관련 임상시험 진척 속도에서 중국에 한 발 뒤쳐져 있다. 임상시험 전 영장류 실험을 통해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발목을 잡았다.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은 2011년 무균돼지 각막을 탈세포화 한 후 각막 상층부위 절반을 원숭이에게 이식한 뒤 스테로이드로 면역억제를 한 결과, 6개월 이상 각막이 유지됐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또 돼지 각막 전체를 이식한 후 항체(CD154)를 통해 면역억제를 할 경우에도 이식 각막이 6개월 이상 정상으로 유지됐다.
박 단장은 “임상시험 전 영장류 실험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데, 이미 국내에서는 영장류 실험이 성공적으로 종료됐다”면서 “중국은 영장류 실험을 생략하고 인간에게 이식한 것이므로 2018년 하반기에 국내에서 이종각막 이식이 진행된다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이식 연구가 이뤄지는 것”이라고 의미를 말했다.
■이종이식 기술 수준 국내외 비교
<자료: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이종이식 임상시험 가능토록 관련 법 제정 필요”
심장, 신장, 간, 폐 등 고형장기의 이종이식도 머지않았다. 면역 유발원을 제거하거나, 면역 회피용 인간유전자를 돼지에게 삽입한 ‘형질전환돼지’ 생산이 가능해진 덕이다. 의학자들은 “미국에서는 이종이식의 대중화를 위해 형질전환돼지의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고 있다”면서 “장기수급 불균형 문제가 심각한 우리나라도 고형장기 이종이식 연구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센터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기준 국내 장기이식 대기자는 2만4,607명에 달하는 반면, 실제 이식을 받은 환자는 3,901명에 불과하다. 수요가 가장 많은 장기는 신장으로 대기자 수가 1만4,477명을 헤아린다.
장기와 조직의 이종 간 이식 연구 활성화를 위해서는 풀어야 할 난제가 적지않다. 의학자들은 돼지와 사람의 종(種) 간 장벽 극복 등 기술적 문제와 함께, 배아 단계에서 사람과 동물의 줄기세포가 혼합되는데 따른 윤리적 문제가 법적으로 해결돼야 이종이식 임상시험이 가능하다며 관련 법 제정을 주문하고 있다.
의학자들이 관련 법 제정을 촉구하는 이유는 시험 대상자를 평생 추적해야 하기 때문이다. WHO와 세계이종이식학회는 시험 대상자와 함께 시험 대상자의 배우자와 가족까지 검사와 진단을 받도록 권고하고 있다. 임상시험이 시작된 후 대상자가 동의를 철회, 남은 치료 행위가 중단되더라도 시험 대상자와 가족에 대한 추적은 평생토록 지속된다.
또 이종이식으로 인한 인수공통 감염병 발생이 의심될 경우 해당 시험 대상자를 격리해 치료하고 전염경로 파악 등을 위한 역학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시험 대상자 등의 추적관리에 대한 사회적 동의와 법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이종이식 임상시험이 애초 불가능한 것이다.
박 단장은 이와 관련, “현재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첨단재생의료지원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나 보건복지부가 초안을 마련한 ‘이종이식법’이 국회를 통과해야 세계 최고 수준의 이종이식 연구가 결실을 맺을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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