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나가수에 나가겠다고 할 때 말렸어요.”
불과 1년 만이다. 지지리도 안 풀리는 무명가수에서 중국을 뒤흔드는 한류 가수로 등극하기까지 네 계절밖에 걸리지 않았다. 2015년 3월 ‘너의 목소리가 보여’ 박정현 편에서 대중에 얼굴을 알린 뒤, 불후의 명곡에 진출해 가족 특집 편을 비롯해 세 번이나 우승을 차지하면서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중국 나가수에서 연락이 온 것은 지난해 11월이었다. 구미에서 작은 제조업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아버지 황석성 씨는 “한국 활동도 소화하기 벅찬데, 중국까지는 무리”라면서 “국내에서 인지도와 실력을 더 쌓으라”고 조언했다. 황쯔리에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지금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 아버지의 만류에도 치열은 의욕이 넘쳤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확신이 가득하더라고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까지 치열이가 하겠다고 해서 안 된 게 뭐가 있나. 이번에도 아들을 믿어보자!”
- 저녁마다 아버지 발마사지 해주던 아들
치열이 서울로 올라간 건 2005년이었다. 중학교 때 춤과 노래를 시작해 고등학교 시절 지역에서 여고생 팬을 몰고 다닐 정도로 재능이 특출했지만 아버지는 그저 취미 생활로 만족하길 원했다.
“가수가 얼마나 힘듭니까. 그냥 기술 배워서 평범하게 살라고 했죠. 치열이가 어릴 때부터 워낙 손재주가 있어서 기술을 배우면 잘 할 것 같았거든요.”
다른 사정도 있었다. 아버지가 그 즈음 위암 수술을 받았다. 주변에는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2010년에 결국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그때만 해도 일 년 뒤를 장담할 수 없었다.
치열은 ‘불후의 명곡’ 가족 특집 편에서 마음에 쌓인 핏덩이 같은 응어리를 풀었다. 인순이의 ‘아버지’를 눈물로 열창했다. 늘 밝게 웃고 화도 잘 안내는 치열이기에 주변 사람들에겐 낯선 모습이었다. 진심이 통했는지 그날 처음으로 우승을 했다.
“치열이하고 통화를 하면 끊기 전에 꼭 ‘아버지 사랑해요’하고 말해요. 경상도 남자들은 그런 표현 잘 안 하거든요. 치열이는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고등학교 때도 학교 마치고 친구들하고 춤 연습하고 들어와서는 제 발 마사지를 해줬어요. 자기도 피곤할 텐데도요. 치열이가 발을 주물러 주면 저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죠.”
- 치열이가 ‘정말 잘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 순간
그런 배려심 덕분인지 어릴 때부터 친구가 많았다. 황 씨는 “무대에서의 끼도 그렇지만, 친구들 배려하는 것도 타고난 것 같다”고 했다.
“서너 살 때 친구들하고 아파트 안에 있는 작은 산에서 자주 놀았어요. 한창 놀고 집에 들어갈 때가 되면 친구들을 죽 줄을 세워놓고는 ‘이리 와바’하면서 엉덩이에 묻은 먼지를 한 명 한 명 털어주더군요. 친구가 안 붙을 수 없는 성격이죠.”
또래 아이들 중에서 인기 최고였고, 치열이와 나이가 비슷한 자녀를 둔 젊은 어머니들 사이에서도 가장 귀염 받는 아이가 됐다. 어린 시절 쌓은 우정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중국 ‘나가수4’ 8차 경연에서 ‘허니’로 1등을 하고 국내 프로그램 녹화를 위해 잠시 귀국했을 때였어요. 인천공항입국장 앞에서 축하 현수막이 걸린 리무진을 타고 나가더라고요. 전 기획사에서 그렇게 해준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친구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한류스타가 된 친구를 위해 마련한 이벤트였어요.”
구미에서 같이 올라간 친구들이나 무명 시절에 반지하 골방에서 같이 먹고 자던 음악 동료들이었다. 개중에는 여전히 힘든 친구들이 많다.
“다들 형편이 어려울 텐데도 그렇게 돈을 모아서 이벤트를 해줬으니까 정말 고마운 일이죠. 그런 친구들 보면서 ‘치열이가 정말 잘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안심이 됐습니다.”
아버지의 소망은 하나다. “30년, 40년 행복하게 노래하면서 롱런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그러면서 “진즉에 아들의 끼와 재능을 몰라본 것이 미안하다”고 덧붙였다.
“9년 동안 부모의 반대에도 꿈을 버리지 않고 꾸준히 노력한 결과가 오늘의 기적 같은 상황입니다. 이런 날이 올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대견하면서도 미안하죠. 요즘 3포 세대다, 5포 세대다 해서 많은 젊은이들이 힘들어하고 있는데, 그런 이들에게 치열이가 희망의 증거가 되었으면 바람입니다. 젊은 친구들이 지치거나 포기하지 말고 다들 치열이처럼 나름의 꿈을 이루었으면 합니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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