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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용과 해태의 정신

입력
2016.04.11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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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 선동열(53ㆍ전 KIA 감독)이 불펜에서 몸만 풀어도 상대가 벌벌 떨던 시절이 있었다. 빨간색 상의와 검은색 하의, 검정 헬멧 등 해태의 원정 유니폼은 다른 구단에 ‘공포의 상징’으로 통했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부터 1997년까지 9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동안 KBO리그의 화두는 ‘올해도 해태의 우승인가, 아닌가’였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모기업의 재정난 끝에 2001년 8월 KIA로 재탄생한 타이거즈는 삼성 라이온즈에 리그의 주도권을 넘겨줬다. 당시 해태의 주역으로 활약했던 이순철(55)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2011년 KIA 수석코치로 부임하면서 ‘해태 정신’의 실종을 원인으로 지적했다. 해태는 개개인의 테크닉도 뛰어났지만 선수단 전체의 헝그리 정신이 선수들을 하나로 결집시켰다는 게 해태 출신들의 전언이다. 엄격한 위계질서 때문에 타 팀 선수들은 “무섭다”는 이유로 트레이드 기피 1호 팀으로 꼽기도 했지만 자연스럽게 형성된 해태만의 문화였다.

이종범(46ㆍ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의 은퇴로 상징됐던 해태 세대와의 작별은 지난해 마지막 ‘해태맨’ 유동훈(39ㆍKIA 코치)과 김상훈(39ㆍKIA 코치)까지 유니폼을 벗으면서 해태와 타이거즈는 영원한 이별을 고하는 듯했다.

그런데 얼마 전 타이거즈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18년 만에 고향 팀으로 돌아온 임창용(40ㆍKIA)의 복귀다. 비록 ‘금의환향’은 아니었지만 유동훈과 김상훈의 은퇴로 끊겼던 해태 선수, 해태 정신의 명맥이 되살아난 셈이다. 임창용은 광주 진흥고를 졸업하고 1995년 해태에 입단해 1997년 26세이브, 1998년 34세이브를 거두며 리그 정상급 마무리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으며 1997년 해태의 마지막 우승을 경험한 멤버다.

해태의 까만 바지를 입어봤던 선수들 가운데 지금도 현역은 10개 구단을 통틀어도 임창용 외에 이호준(40ㆍNC), 정성훈(36ㆍLG), 김상현(36ㆍkt), 김경언(34ㆍ한화), 강영식(35ㆍ롯데) 등 6명뿐이다.

권위보다 스킨십을 앞세워 선수단을 아우르는 김기태(47)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KIA의 팀 컬러는 해태의 그것과는 다소 거리가 멀 수 있다. 무엇보다 시대가 변했고, 분위기도 달라졌다. KIA 팬들이 임창용의 복귀로 기대하는 해태의 부활 역시 시대와 동떨어진 위계질서가 아닌 끈끈한 정신력과 해태라는 이름이 주었던 ‘무게감’이 아닐까.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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