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여행은 정리가 잘 안 된다. 여행 전에는 환상으로 잔뜩 부풀었다가 여행 후에는 잡히지 않는 의문 부호만 수없이 남긴다. 이 미지의 나라를 여행한다면 기본적으로 숙지해야 할 7계명. 경험담을 팍팍 넣었다.
①CUC vs MN, 두 쪽 난 쿠바 화폐에 적응하라
쿠바 공항에서 환전했다. 손에 쥔 건 쿠바 화폐 CUC(세우세 혹은 쿡). 공항에서 유일한 교통수단인 택시를 타고 아바나 시내로 진입해 달러($) 표기를 처음 본 건 길거리 아이스크림 집이었다. 3$라고 하여 10CUC을 냈다. 7CUC의 잔돈을 받고 화학물질 가득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잔인하게 느낀 사실은 ‘쿠바 물가 엄청 비싸다’는 것이었다. 국민 1인당 한달 수입이 20CUC인데다가 빈티지를 넘어 쓰러져가는 건물 사이에서 이게 가능한 일이란 말이야? 아이스크림의 실제 가격은 3CUC(3600원, 1세우세=1200원)가 아닌, 3MN(150원, 1모네다 나시오날=50원)이었다. 무지한 죗값을 톡톡히 치렀다.
쿠바에선 공식적으로 두 가지 화폐가 통용된다. 단, CUC를 쓰는 곳과 MN(=CUP)을 쓰는 곳이 따로 존재한다. CUC는 미국의 경제 봉쇄 후 달러를 대체하는 외화벌이용 화폐, MN은 실질적인 쿠바의 국영 화폐다. 1CUC는 24MN으로, 세계 정세가 온갖 재주를 부려도 절대 변하지 않는 고정 환율이다. 현지인도 CUC를 쓰며 여행자도 환전소에서 눈치 보지 않고 MN으로 바꿔 사용할 수 있다. 여행하면서 몇 번 속아보면(!) CUC와 MN을 구분해 사용하는 건 세수하듯 자연스러워진다. 오히려 1MN(50원)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1CUC(1200원)를 내며 희희낙락하는 단체 관광객을 구경하는 입장이 될 수도 있다. 남은 MN은 기념품으로 소장할 것. 출국 시 공항 환전소에선 MN을 처음 보는 화폐인 양 취급해 환전도 불가하다.
② MN 레스토랑에 가면 긴장을 늦추진 말라
한창 CUC와 MN 레스토랑 맞추기에 재미가 들었을 때였다. 쿠바 올귄에서 중국음식을 파는 MN 레스토랑을 발견했다. 손가락으로 메뉴를 하나씩 찍어 주문했다. 미식가가 전멸한 듯한 쿠바에서 간만에 포식했으나 영수증을 보고 토끼 눈이 되고 말았다. 예상의 2배가 넘는 금액이었다. 돼지 넓적다리는 주문량보다 더 얹어줬고, 토마토 주스도 잔에 가득(!) 채워 줬다는 이유였다. 누가 원했는데? 레스토랑이 원했다. 주문 받은 여종업원과 셰프, 그리고 매니저까지 삼단 논쟁이 이어졌다. 강하게 대처했다. “계속 그리 주장하면 돈 못 낸다. 까사 주인과 경찰을 불러 제값을 치르겠어.” 모두 물러난 자리, 테이블에 제 값을 두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보통 5CUC(6,000원)인 모히토를 5MN(250원)을 내고 마실 기회가 있다면? 공짜로 돈 버는 듯한 후자의 선택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MN이 통용되는 카페나 바, 레스토랑에선 고수 흉내도 낼 수 있다. 현지인과 같은 수준에서 즐기는 정겨움은 부가 서비스다. 단, MN 레스토랑 입장 자체를 거부당하거나 MN 통용 레스토랑임에도 덜컥 외국인용 CUC 메뉴판을 받을 때도 있다. 도전을 적극적으로 부추긴다.
③ 아바나의 Museo Nacional 28 de Septiembre를 첫 행선지로
아바나 거리를 걸으며 쿠바 국기 이상으로 자주 보는 게 CDR 마크다. 꾸미기 경주를 벌이듯 디자인도 다양하다. 일정 구간별로 대문에 CDR 대표를 알리는 표식까지 보니 궁금증이 폭발했다. 가끔 현 정부에 불만을 터트리는 현지인을 만났는데, 그럴 때면 늘 주변 눈치를 심하게 보거나 복화술을 하곤 했다. 대체 왜일까?
CDR이란 Comites de Defensa de la Revolucion의 약자로, 풀이하면 ‘혁명방위위원회’.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미국의 경제 봉쇄에 맞서기 위한 조직이다. 좋게 말하면 체제 수호를 위한 자치 조직이지만, 그만큼 국민은 처절한 감시를 당한다는 이야기. 정부에 대한 불평불만은 고이 접어두란 무언의 압박인 셈이다. 1,000천만이 조금 넘는 인구 중 CDR 멤버는 약 800만명. 경찰과 비밀경찰을 제외하면 대부분 국민이 CDR인 셈이다.
④ 히네테로(Jinetero)를 운명처럼 받아들이라
아바나의 까삐똘리오 앞에서 차에 치일 뻔한 순간, 카를로스는 3년 전 부모가 이곳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며 조심하라고 일렀다. 그의 얼굴엔 ‘정직’이 써 있었다. 그에게 맛집을 물어봤고, 그 맛집 손님은 우리 셋뿐. 속은 기분이 슬슬 들었으나 ‘부모를 잃은 착한 남자(!)’를 의심한 자신을 질책하던 터, 비욘세가 공연 왔던 곳(미국인 출입이 불가능한 당시)이라는 거짓 문구에 가슴이 난도질 당했다. 모히토 한 잔당 5CUC(6,000원), 식비는 인당 18CUC(21,600원)로, 서비스 팁까지 더해 우린 1시간 만에 5개월 치 쿠바 현지인 월급을 썼다. ‘호갱’으로 전세계에 소문날 뻔했다.
히네테로(여자는 히네테라)는 남자 외국인을 물주로 데이트하는 직업 여성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외국인을 상대로 한 ‘삐끼’로 널리 통용된다. 이들은 까사(쿠바식 민박) 및 버스, 레스토랑, 시가 판매처 등 온갖 안내의 종결자다. 대부분 당하는 게 자연스러울 정도로 순하고 정직한 얼굴을 자랑한다. 하도 많아 쿠바인이라면 누구나 잠재적 히네테로가 아닐지 상상했을 정도다. 지도를 보면서 서성이거나 홀로 여행한다면, 이들의 주 먹잇감이다. 끈기와 인내는 이들의 무기, 대화의 종결은 ‘돈 주세요’다. 원하지 않으면 ‘No gracias(아니 됐어)’를 외친 후 투명인간처럼 대한다(돌아서도 한동안 옆에 있을 거다). 여행자가 많은 곳일수록 히네테로의 수도 증가한다. ‘대가 없는 친절은 없다’는 자본주의 경제를 체화한 이들이다.
⑤ 콜렉티보와 유연하게 가격 협상을 하라
아바나의 서쪽 비날레스에서 우리의 개인 기사였던 빠뽀의 도움으로 동쪽 시엔푸에고스로 가는 택시에 탑승했다. 버스 요금은 38CUC인데, 30CUC를 제시해 눈이 먼 터였다. 차종은 3인용 푸조였다(는 걸 타기 전엔 알지 못했다). 2명의 독일인과 합승했는데, 짐을 놓을 재간이 없어 보조 가방은 무릎 위에 모셨다. 몸을 반으로 접어 가는데, 중도에 멈춘 아바나에서 다른 택시로 옮기라는 명령을(!) 받았다. 6시간 만에 도착했다. 엉덩이는 종일 악몽에 시달렸다.
쿠바의 낭만으로 1970~80년대 올드카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긴 하지만 실제 탑승한다면 그 낭만을 심히 의심하게 된다. 특히 장거리를 뛰는 도시 횡단용 택시의 대부분은 폐차 직전이기 일쑤다. 와이퍼와 창문 여닫이가 실종돼 창문 사이로 침투하는 빗물을 몸으로 피하는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미리 탑승할 택시의 조건을 확인하고, 버스와 비슷하거나 낮게 가격 협상에 들어갈 것. 버스 터미널은 시내에서 먼 곳도 많아 까사 문 앞까지 데려다 주는 택시가 이득일 경우가 많다. 단, 올드 클래식 스타일 차량 중에는 승차감 제로의 ‘늙은’ 차도 많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⑥ 까사 주인과의 밀당에 현명하게 대처하라
산티 스피리투스에서 주인이 권하던 까사 내 저녁 식사를 쉽게 승낙했다. 숙박비를 5CUC나 화끈하게 깎아준 것에 대한 도리라 생각했다. 말끔한 테이블 위에서 국수가 섞인 카레 수프로 겨우 허기를 면하자 가격을 묻지 않은 실수가 떠올랐다. 팔뚝만한 생선구이부터 팔아도 손색없는 절정의 초코케이크까지, 멋대로 예상한 6CUC은 어림 반 푼어치도 없겠지? 역시 주인 맘은 우리와 달랐다. 9CUC였다.
공유경제의 초석인 에어비앤비는 사실 인터넷이 없던 쿠바가 원조다. 인터내셔널 호텔이 아닌 이상 쿠바의 모든 숙박은 까사 빠티꿀라르(이하 까사), 일반 가정집에서 남는 방 한 칸을 내어주는 식이다. 방 하나당 대부분 20CUC가 공식가격이지만 지방으로 갈수록 협상의 여지가 많다. 보통 세금이 절반을 차지해 까사의 수입은 여행자에게 유료 식사를 제공하며 뽑는다. 덕분에 한 끼라도 안 먹으면 죄를 짓는 양 여행자를 코너로 모는 주인도 가끔 있다. 상차림은 손이 큰 엄마의 밥상. 보통 아침은 4CUC, 저녁은 메뉴에 따라 5~10CUC다. 길거리의 10MN 짜리 피자나 샌드위치로 영양실조가 될 생각이 아니라면 까사 내 식사를 적극 이용해도 좋다. 단, 미리 가격을 물어 얼굴이 홍당무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한다.
⑦ 외부와의 접속, 인터넷은 그냥 포기해라
현지 여행사에 멕시코행 티켓을 문의했건만 계속 실패한 터였다. 없다거나 멕시코 출국행 티켓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답변이었다. 결국, 아바나에서 멕시코시티로 가는 저가 항공 티켓을 1시간 넘게 걸려 자체 예약했다. 그런데 프린트할 장소가 오리무중이었다. 한 으리으리한 인터내셔널 호텔에 문의하니 방법이 요상했다. 일단 내 메일상의 티켓을 호텔 직원의 메일로 보내 그가 직접 프린트하는 시스템. 30분에 걸쳐 겨우 메일을 확인하니 티켓을 프린트할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느리기에, 호텔이 지정한 기본 2시간 사용료를 지불한 후였다. 눈물이 강하게 맺혔다.
그 동안 쿠바를 더욱 섬처럼 고립시켰던 것이 바로 ‘인터넷 불가’란 딱지다. 시간당 보통 8~10CUC인 데다가 사이트 하나를 여는 동안 딴청을 피울 시간을 넉넉히 주는 속도다. 현재 쿠바 여행 안내 사이트인 CUBA2DAY에 따르면 시간당 인터넷 이용료가 곧 2CUC~4.5CUC로 낮아질 예정이며, 올 7월 말이면 와이파이가 가능한 장소가 35곳 생긴다고 한다. 언제 바뀔지 모르는 미래의 소식이다. 현재 와이파이가 가능한 장소는 오직 아바나의 5군데뿐. 결국 아직까진 세상 소식을 끊고 자연을, 사람을 가까이 들여다볼 야생적인 쿠바 여행이 가능하단 이야기다.
강미승 여행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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