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으로 노출된 타이어를 덮으며 앞뒤로 이어지는 우아한 곡선, 긴 코처럼 앞으로 툭 튀어나온 엔진룸, 천으로 만든 지붕과 좁은 실내. 지붕을 덮으면 머리 윗공간 여유가 없었고 차 높이가 낮아 노면에 달라붙어 달리는 기분을 낼 수 있었던 이 차는 한국자동차 역사에 깜짝 등장한 영국차 ‘칼리스타’다.
칼리스타에는 한국과 영국의 자동차 산업과 인물들이 교차한다. 시작은 로버트 얀켈이라는 영국인이다. 카레이서이자 설계 엔지니어였고 패션 디자이너로도 활약했던 팔방미인인 그는 1971년 펜더사를 설립해 ‘J72’라는 차를 만든다. 재규어 SS100을 본뜬 차였다. 당시 영국에선 뒷마당에서 가내 수공업 정도의 규모로 차를 만들던 ‘백 야드 빌더’들이 넘쳐났다. J72에 이어 1976년 나온 차가 후에 칼리스타로 발전하는 ‘리마’다.
당시 영국 출장 중이던 진도모피의 김영철 회장이 리마를 보고 홀딱 반한다. 이리저리 수소문해본 결과 회사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김 회장은 차를 사는 대신 아예 회사를 인수한다. 소문난 자동차 애호가였던 김 회장은 당시 40대 초반이었다.
리마는 칼리스타로 이름을 바꾸고 거듭났다. 포드의 4기통 2.8ℓ 엔진과 알루미늄 차체가 적용됐다. 칼리스타는 그리스어로 작고 아름답다는 뜻이다. 김 회장의 손에서 부활한 칼리스타는 작지만 아름다운 차로 영국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가장 화려한 시절을 보낸다.
김석원 쌍용자동차 회장이 등장하는 건 1988년이다. 동아자동차를 인수하며 본격적인 자동차 사업에 뛰어든 쌍용차는 펜더사를 인수해 국내 생산을 시도한다. 1990년에는 영국 생산라인을 평택공장으로 이전했고, 1992년 1월 본격 판매에 나섰다. 김 회장 역시 개발 중인 차를 직접 시운전하기를 즐겼을 정도로 소문난 자동차 애호가였다.
칼리스타는 최고출력 145마력인 V6 3.0 가솔린 엔진 모델이 3,670만원, 120마력인 직렬 4기통 2.0 가솔린 엔진 모델이 3,170만원에 판매됐다. 변속기는 수동 5단과 자동 4단 중에서 선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비싼 가격에다 예사롭지 않은 디자인 때문에 세인들 눈에는 호화 사치품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는 수입차를 사면 세무조사를 각오해야 했던 시절이다. 쌍용차가 만든 칼리스타는 엄연히 국산차였지만 튀어도 너무 튀어 유독 지켜보는 눈이 많았다.
칼리스타에는 수많은 찬사가 쏟아졌지만 정작 판매는 부진했다. 국내외에서 수백 대의 주문이 몰렸다는 얘기도 전해지지만 실제 판매는 69대에 불과했다. 3년간 내수 32대, 수출 37대가 전부였다. 시대를 너무 앞서 간 탓일까. 영국에서 1976년 리마로 시작한 칼리스타의 역사는 한국에서 1994년 6월 생산을 종료하며 마침표를 찍었다.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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