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집을 지납니다. 세 집을 지나니 담 담장 담벽 벽이 추가됩니다. 한동안 계속되다가 목책과 철책을 딱 한 번씩 지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집은 사라지고 ‘~과’와 ‘~을’도 사라지고 벽 벽 벽입니다. 김대수의 벽 우만식의 벽 이벌의 벽. 이 시를 읽는 우리는 어디를 통과하는 것일까요.
시인이 ‘날(生)이미지시’라고 명명한 후기시에 속하는 작품입니다. 인간이 덧씌워놓은 관념이나 허구를 배제하는 시론으로, ‘세계를 투명하게 인식’하고자 한 언어주의자의 행로였습니다. 제목이 ‘사람의 집’이 아니라 ‘사람과 집’입니다. ‘~과’는 종속이 아닌 나란함, 즉 수평ㆍ개방적 연대를 가리킵니다. 오규원 후기시의 지향이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호명은 사람, 집(세상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에 덧씌워놓은 관념을 벗겨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강본의 벽쯤에 이르면, 자신도 모르게 이강본과 벽, 이라고 수정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공사장 철책에도 선거용 벽보가 붙었습니다. 산책길에 한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내세운 지향들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내가 봉오리 하나를 매달면, 세상은 그만큼 깨어날 작정을 합니다. ‘사람과 집’을 위해, 이틀 뒤, 꽃봉오리 하나씩!
깨끗한 한 표를 찍으러 가야겠습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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