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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독재로부터 피신처가 돼준 로큰롤

입력
2016.04.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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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역사적인 쿠바 방문 이후 영국 록 밴드 롤링 스톤스가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무료 콘서트를 열었다. 상대적으로 이 공연이 작은 이벤트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오바마 대통령은 반세기 이상 이어진 뿌리 깊은 적대심을 깨고 쿠바와 관계를 회복했는데 멤버들 평균 연령이 70대인 롤링 스톤스는 매우 시끄러운 음악을 연주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상징적인 면에서 이 콘서트는 결코 가볍게 볼 만한 것이 아니었다. 롤링 스톤스가 수십 만의 쿠바 팬들 앞에서 공연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이해하려면 공산주의 독재 정권 하에서 사는 이들에게 로큰롤이 어떤 의미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체코슬로바키아를 해방시킨 로큰롤

1970년대 체코슬로바키아를 예로 들어보자. 당시 체코슬로바키아는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처럼 황량하고 억압적이며 재미없는 곳이었다. 독재정권의 뜻에 무조건 따르는 이들이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그곳에서 사람들은 정부에 순응하도록 강요됐고 창의성은 억압됐다. 로큰롤은 타락한 자본주의에서 나온 유해물로 여겨졌다. 영어로 노래하던 체코슬로바키아의 록 밴드 ‘플라스틱 피플 오브 더 유니버스’는 1970년대 후반 ‘조직적 평화 방해죄’로 체포됐다. 롤링 스톤스 등 서구 록 그룹들의 음악은 금지됐다.

하지만 체코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국가에는 밀수된 서구의 록 음반이 유통됐다. 훗날 대통령 자리에 오른 반체제 인사 극작가 바츨라프 하벨을 비롯한 젊은 록 팬들에게 이런 음반들은 보물과도 같았다. 평범하게 살도록 강요당하고 감시당하며 따분하게 지내던 이들에게 금지된 소리는 탈출구 역할을 했다. 시끄럽고 무정부적이며 섹시한 음악 말이다. 로큰롤은 비록 잠시뿐일지라도 자유가 어떤 것일지 상상할 수 있게 했다. 그래서 정부는 로큰롤이 매우 전복적이라고 여겼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의 록 팬들에게 롤링 스톤스, 벨벳 언더그라운드, 프랭크 자파의 마더스 오브 인벤션 같은 그룹들의 음악은 그저 오락거리였다. 록스타들 사이에 어느 정도 정치적 허세가 있었던 건 분명하지만 대체로 사소하게 여길 만한 태도였다. 음악이 단순한 태도를 너머 심각한 반역적 표현이었던 체코슬로바키아에선 그렇지 않았다. 실제로 하벨 같은 반체제 인사들에겐 플라스틱 피플 오브 더 유니버스를 변호하는 것이 결국 체코슬로바키아의 77헌장 운동을 일으키게 하는 공공의 이유가 됐다.

공산당 정권이 무너지고 난 뒤 민주주의 정부를 세운 하벨은 프랭크 자파에게 정부 공직을 제안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랬듯 자파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 같은 일은 하벨 같은 사람들이 체포될 것을 각오하고 몰래 프랭크 자파를 들어야 했을 때 그들에게 그 음악이 얼마나 대단한 의미였는지를 보여준다.

체코 출신 극작가 톰 스토파드가 쓴 2006년 연극 ‘로큰롤’은 철의 장막에 갇혀 있던 나라에서 록 음악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아름답게 그려냈다. 이 연극에서 하벨을 닮은 캐릭터인 퍼디난드(하벨의 희곡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같은 이름)는 음악이 정치적 저항의 가장 뛰어난 형식이라고 찬양한다. 다른 인물들은 음악적 전복이 사소한 것이라며 그의 견해를 조롱한다. 하벨이 그랬듯 스토파드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연극은 롤링 스톤스의 역사적인 1990년 체코 프라하 공연으로 끝을 맺는다.

쿠바에 희망의 미래가 다가오고 있는가

록은 듣는 이를 황홀하게 만드는 음악이다. 황홀경은 자제력을 잃을 수 있도록 해준다. 그렇다고 늘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다. 나치 집회에서의 집단 히스테리 역시 황홀경의 형태였다. 가끔 폭력적으로 변하는 축구 관중들의 행동 역시 마찬가지다.

매우 점잖은 싱가포르인들 무리가 복음주의 교회 예배에서 자제력을 잃어버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흥분한 일본인 목사가 재촉하자 회색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거품을 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르며 땅바닥 위에서 몸부림쳤다. 고상한 광경은 아니었다. 사실 무서웠다. 하지만 사람들이 규칙과 관습에 얽매어 사는 일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일본인 목사의 주장이 잘못된 건 아니다. 집회에서 그 목사가 말한 것처럼 내향적인 일본인과 싱가포르인이라면 특히나 그렇다.

음악이 주는 황홀경이 광신도들의 방언과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러한 경험은 서로 관련이 있다. 공적으로 사회 질서를 지키려는 자들이 그런 의식을 몹시도 금지하려는 이유다. 기원전 380년, 플라톤은 전통적 형식에서 벗어난 음악을 듣지 말라고 경고했다. ‘국가’에서 그는 음악적 혁신 그리고 사람들을 유난히 흥분시키는 새로운 소리가 국가에 위험하다고 썼다. 무법상태는 이단적인 음악 연주와 함께 시작한다고 그는 믿었다. 그리고 정부에 그런 것을 금지하라고 조언했다.

지난달 롤링 스톤스의 믹 재거는 쿠바 팬들에게 스페인어로 이렇게 말했다. “마침내 시대가 바뀌고 있다.”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 오바마도 아바나를 떠나며 행한 연설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희망의 미래”인 새로운 시대를 이야기했다. 믹 재거보다 10살은 더 많고 자기보다 30살은 더 많은 쿠바 독재자 라울 카스트로에게 오바마는 언론의 자유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좋은 이야기다. 하지만 쿠바에서 진정한 정치적 자유는 아마도 천천히 이뤄질 것이다. 중국의 예는 개인의 쾌락주의가 정치적 권위주의와 성공적으로 결합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롤링 스톤스는 연주할 음악을 중국 정부가 검열하겠다고 고집했는데도 이미 상하이에서 공연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로큰롤은 공식적으로 쿠바에 상륙했다. 믹 재거는 쿠바의 열광적인 음악적 전통에 적절하게 경의를 표했다. 쿠바인들은 이미 춤을 출 줄 알고 있었다. 쿠바가 앞으로 훨씬 커다란 발걸음을 내디디려면 이제 독재자들이 일어나야 한다.

이언 부르마 미국 바드칼리지 교수

번역=고경석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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