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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한옥의 마지막 세대... 100년 간 남대문 상권 지켜봐

입력
2016.04.10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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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전인 2005년까지 3채가 나란했던 한옥상가군. 안창모 제공
철거 전인 2005년까지 3채가 나란했던 한옥상가군. 안창모 제공

‘역사도시’가 화두다. 지역에서는 ‘고도(古都)보존’ 운동이 활발하고, 서울에서는 ‘600년 역사도시를 너머 2,000년 역사도시’로 시공간을 확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관심은 대체로 근대 이전 시기에 맞춰져 있다. 마치 1960, 70년대 ‘찬란한 문화유산’이라는 구호가 개별 건축문화재에서 도시로 옮겨진 듯하다.

서울에는 이미 세계유산인 창덕궁과 종묘를 비롯하여 세계유산에 추가될 수 있는 잠재적 가치가 큰 문화유산이 많지만, 그 동안 주목 받았던 문화유산은 대부분 왕과 사대부를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그 동안 10만 도성민의 삶의 현장에는 무관심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지난해 5월 ‘역사도심관리기본계획’ 발표 이후 서울시가 공평지구재개발 사업지구에서 발굴된 조선시대의 주택과 골목길 전면 보존을 확정한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공평지구에서 발굴된 유적지의 전면 보존은 역사도시 관리의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육의전에 인접한 상권의 중심지인 발굴 현장의 보존은 역사도시서울의 역사적 완전성과 진정성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작지만 의미 있는 한 채의 한옥이 더해진다면, 그 의미는 더욱 커질 듯하다. 남대문로 4가 71-1에 위치한 2층 한옥상가가 그 주인공이다.

남대문로는 종로와 함께 지난 600년 동안 도성의 중심가로였으며, 상업의 중심이었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은행 앞 광장을 중심으로 일본인의 식민자본이 세력을 확장하던 시절에도 한인이 상권을 잃지 않았던 곳이 남대문로다. 그 거리에 기와지붕을 쓴 2층 건물 한 채가 외롭게 서 있다. 100년 남짓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웃한 친구 둘이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서울시에서는 한옥상가 뒤편에 호텔을 짓도록 승인하면서 잃어버린 옛 친구를 찾아주라고 결정했지만, 언제 옛 친구들이 돌아올 지 알 수 없다. 다행히 문화재위원회에서 건축주 흥국생명의 등록문화재 신청을 검토한 결과 종로와 남대문로에 남아있는 유일한 한옥상가로써 등록문화재 가치가 충분하다는 검토가 나와 최근 문화재로 등록 예고됐다.

1920년대 남대문로(오른쪽)와 세종대로(왼쪽) 풍경. 오른쪽 전차 뒤편이 바로 한옥상가다. ‘경성시구개정사업, 회고 20년’ 자료
1920년대 남대문로(오른쪽)와 세종대로(왼쪽) 풍경. 오른쪽 전차 뒤편이 바로 한옥상가다. ‘경성시구개정사업, 회고 20년’ 자료

이 한옥상가는 고밀화된 근대도시의 화재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벽돌 구조를 채택한 2층 한옥의 마지막 세대에 해당한다. 북촌의 도시한옥이 전통한옥 주거의 진화를 보여준다면, 남대문로의 한옥상가는 전통한옥상가의 진화와 지난 100년 남대문로의 역사를 안고 있는 중요한 유산이다. 외국인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남대문시장과 북창동 한가운데 위치한 한옥상가는 더할 나위 없는 관광상품이기도 하다.

안창모 경기대대학원 건축설계학과 교수

지켜야할 근대건축 기고자 안창모 교수
지켜야할 근대건축 기고자 안창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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