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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 부활의 꿈, 청년 매니저가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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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 부활의 꿈, 청년 매니저가 뛴다

입력
2016.04.0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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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누비며 상인, 손님 불편 모아

젊은 감각으로 경영 개선 주도

스마트폰 앱, 다국어 책자 개발도

전통시장 청년매니저인 이은해(왼쪽)씨가 지난달 24일 서울 강서구 송화시장에서 한 상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전통시장 청년매니저인 이은해(왼쪽)씨가 지난달 24일 서울 강서구 송화시장에서 한 상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지난달 15일부터 매일 아침 서울 강서구 송화골목시장으로 출근하고 있는 스물 아홉 청년 이은해씨. 그의 공식 직함은 ‘전통시장 청년매니저’다. 올 한 해 송화시장 경영을 책임지게 된 이씨는 시장 곳곳을 누비며 상인들이 불편한 점은 없는지 확인하고, 소비자가 원하는 부분을 알아내 시장 경영에 도움을 주는 역할 등을 한다.

사실 이 곳에서 일하기 전까지 그도 청년 백수 신세였다. 직장과 야간대학 생활을 병행하다 2006년 결혼으로 가사와 육아에 전념했던 이씨는 둘째 아이 출산 후 여러 차례 재취업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크고 작은 기업에 서류 넣기를 예닐곱번, 돌아오는 건 “기혼에 아이까지 있는 여성을 채용하기는 힘들다”는 대답뿐이었다. 좌절하던 이씨에게 송화시장은 한 줄기 빛이 됐다. 그는 8일 “초등학생 때부터 시장을 누빈 덕분에 누구보다 사정을 잘 알아 젊은 기운을 불어 넣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통시장 청년매니저는 쇠락해 가는 전통시장의 부활과 청년 일자리 창출을 동시에 꾀하겠다며 서울시가 내놓은 혁신 정책이다. 청년매니저가 상인과 소비자, 정부 사이에서 젊은 감각을 불어 넣으면 시장 활기도 살아나고 청년실업 해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서울시의 구상이다. 전통시장 매니저는 이씨를 포함해 총 32명. 이 중 20, 30대 청년매니저는 18명이다.

전통시장은 최근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에 밀려 급격히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2014년 전국 전통시장 1,398곳의 매출 총액은 20조1,000억원. 전체 전통시장의 3분의1 규모에 불과한 대형마트 439곳이 거둔 매출(47조5,000억원)의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1974년 만들어져 지역 상권의 터줏대감 노릇을 해 온 송화시장 역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역세권에 위치해 하루 평균 2만명이 시장을 지나다니지만 행인들은 대부분 전통시장이 익숙지 않은 20~40대다. 시장과 상인들은 외면 받기 일쑤다. 특히 3,4년 전부터 인근에 하나 둘 들어선 대형마트들은 송화시장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불장사를 하는 조덕준(67)씨는 “30년 전 송화시장에 터를 잡았으나 인터넷이 보편화하고 대형마트가 골목상권에 침투하면서 매출이 20% 넘게 줄었다”고 푸념했다.

이씨의 최우선 임무도 젊은 취향에 맞게 시장을 탈바꿈시켜 고객들의 발길을 되돌리는 일이다. 그는 요즘 중소기업청이 지난해 송화시장 부근 강서로와 공항대로 일대를 의료관광특구로 지정한 점을 눈여겨 보고 있다. 다국어 안내 책자나 자체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등 관광특구를 적극 활용해 외국인들을 유치할 경우 시장 수요를 늘릴 수 있다는 생각에 점포를 일일이 찾아 다니며 상인들에게 변화를 설득하는 중이다.

이씨 입장에서도 청년시장 매니저는 좋은 기회다. 하루 8시간 근무로 5만2,000원 내외의 일당을 받으면서 경력 쌓기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나이가 어리다는 약점이 오히려 전통시장처럼 패기와 특단의 돌파구가 필요한 조직에서는 강점이 될 수 있다고 자신한다”고 강조했다.

청년매니저가 침체된 전통시장의 구원투수가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씨의 영향력을 두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상인들도 많은 게 사실이다. 23년 간 속옷 장사를 해 온 정숙경(56)씨는 “20대는 흔히 대기업을 선호하기 마련인데 선뜻 전통시장 경영에 뛰어든 이씨가 기특하다”면서도 “하지만 상인들이 수십년간 쌓은 경영 노하우에 대한 믿음이 강해 새 사업을 쉽게 받아들일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청년매니저 사업을 이제 막 시작한 단계라 성공 여부를 논하는 것은 이른 감이 있다”며 “20,30대 매니저의 신선한 아이디어가 전통시장 혁신의 토대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만큼 상인들과 끈끈한 협력체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지후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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