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엔 버젓이 변호사 활동
제 식구엔 솜방망이 처리로
사법기관에 대한 불신 키워
편법 재산증식 의혹을 받고 있는 진경준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검사장)이 사의를 표했을 때 비판이 쏟아진 것은 절차대로 수리하겠다는 법무부에 대해서다. 과거 대법원이나 법무부가 물의를 빚은 판ㆍ검사들에 대해 면죄부를 주듯 징계 없이 사표를 수리한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사법 처리 대상은 아니라 하더라도 비위행위나 부적절한 처신을 보인 판ㆍ검사들이 징계 없이 사직한 뒤엔 버젓이 변호사로 활동하곤 한다. 국민에게는 무소불위의 사법권을 행사하면서 정작 제 식구에겐 관대한 이런 일이 사법기관에 대한 불신을 더욱 깊게 한다.
지난해 2월 대법원은 인터넷에서 전라도 지역과 고 노무현 대통령을 비방하고 세월호 유가족과 여성을 비하하는 등 막말 댓글을 수천 개 올린 사실이 드러나 파문을 일으킨 이모 부장판사를 아무 징계처분 없이 사직하도록 했다. 이 부장판사가 사실을 시인하고 사표를 제출하자, 대법원은 바로 다음 날 그를 의원면직 처분했다. 그는 지난달 대한변호사협회에서 변호사 등록 및 개업 신청이 받아들여져 변호사 개업이 가능해졌는데, 대법원 징계가 있었다면 상황은 달랐을 수 있다. 변호사법은 ‘공무원 재직 중 위법행위로 형사소추 또는 징계처분을 받거나 그 위법행위와 관련하여 퇴직한 자’에 대해 변협이 변호사 등록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2013년 9월 유모 판사가 대학 후배를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을 때도 대법원은 감사위원회가 징계 논의를 마치기도 전에 사표를 수리했다. 나중에 그는 유죄가 인정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법조계 안팎에선 “판사가 검찰 수사를 받을 때에는 의원면직을 제한하도록 한 법원 예규를 벗어났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올해 1월에는 기업관계자에게 필리핀 원정 접대를 받은 의혹으로 이모 검사가 사표를 냈고, 대검찰청은 징계 없이 사표를 수리했다. 그 역시 변호사 등록 신청을 했다. 이에 대해 서울변호사회는 지난달 “이씨가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처신을 했다”며 ‘변호사 등록 부적격’ 의견을 냈다. 하지만 막말 댓글 판사의 경우에도 서울변호사회가 부적격 의견을 냈지만 최종 결정을 하는 변협이 등록을 받아들인 전례에 비춰, 이 전 검사도 변호사 등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형사처벌을 받을 정도도 아닌데 사표를 내고 변호사 개업까지 막아야 하느냐는 시각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일반 국민 시각에서는 판ㆍ검사로서 심각한 결격사유가 있어 사직한 것인데도 아무 불이익이 없고, 그런 변호사를 믿고 변호를 맡겨야 한다는 데에 불만이 크다. 한 원로 법조인은 “형사적으로 결론이 나오지 않았더라도 의혹이 있다면 스스로 당당하게 밝히고 조사과정에 응해야 하는 것은 달리 말할 여지가 없다”며 “공직자가 지켜야 할 윤리가 있는데, 의혹을 불식시키기 전에 법원과 검찰이 내보내면 국민의 불신만 쌓여간다”고 질타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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