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도 국적도 다르지만, 나이는 모두 50대 후반인 베테랑 외교관 A씨와 B씨. 두 외교관은 모두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 주요 공관의 공관장을 지냈거나, 공관장으로 일하는 등 외교관 경력의 정점을 지나고 있다.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 실명을 밝히지 않은 채 비슷한 상황에서 A씨와 B씨가 보여준 상반된 행동을 소개한다.
김씨 성을 가진 분이 밝힌 A씨 사연이다. 해외공관 대사로 근무하던 시절인 3년여 전 A씨가 본국의 어머니 집을 찾았다. 이 때 어머니와 허물없게 지내는 동네 어르신들에게 잠시 ‘버릇없는 아들’로 찍혔다. A씨 방문을 맞아 이 지역 대학이 추진한 초청 강연 때문이었다.
기특하고 대견한 외교관 아들의 대학 초청 강연을 어머니가 지켜보고 싶은 건 당연했다. 일흔을 훨씬 넘긴 어머니의 동네 친구들도 함께 가기를 원했다. 오해는 여기서 시작됐다. 강연 당일 A씨가 어머니를 직접 모시지 않고 친구들과 함께 오도록 한 것이다.
환한 빛을 발산하며 집 앞에서 대기하던 공용 리무진은 아들이 타자마자 휙 떠나 버렸다. A씨도 어머니에게 “이따 보자”는 말만 남기고 가 버렸다. 지켜보던 동네 어르신들은 순식간에 ‘이런 나쁜 녀석이 있나’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오해는 며칠을 넘기지 못했다. 다음날 신문에 실린 당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부부 사연 덕분이었다.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를 함께 방문했지만 귀국길에 힐러리는 장관 전용기로, 남편 빌 클린턴은 소형 비행기로 따로 왔다는 기사였다. 그 때서야 전날 A씨의 행동이 불효자가 아닌, 공(公)과 사(私)를 엄격히 구별해야 하는 그 나라 외교관의 행동이었음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B씨 경우는 진행과정이 정반대다. B씨가 공관장으로 일하는 지역 언론에 따르면 B씨의 장인 부부가 지난해 여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B씨는 장인 부부와 장인의 대학친구 10명 등 총 14명을 초청해 2시간 가량 점심 식사를 대접했다. 문제는 그 이후다. 참석자가 16명을 넘었던 만큼 만만치 않았을 오찬 비용의 처리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장인 친구들을 접대한 이날 오찬을 공무 행사로 처리해 관련비용 전액을 정부 예산으로 지출했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처음 보도한 현지 언론은 “B씨가 개인 행사를 공무로 처리하기 위해 오찬 날짜를 업무일인 금요일로 선택하는 한편, 장인의 대학 친구들은 물론이고 장인 부부까지 외부인이라며 초청자 명단에 기재했다”고 주장했다. 또 이렇게 지출된 오찬 비용이 1,447달러라고 덧붙였다.
실명을 밝히지 않았지만, 상당수 독자들은 이 칼럼의 처음 4개 문단의 첫 구절만 읽고도 A씨와 B씨가 누군지 알아냈을 것이다.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드리기 위해 굳이 밝힌다면, A씨는 최초의 한국계 주한 미국대사였던 성김 전 대사이다. B씨는 우리 외교부 미주 지역의 한 공관장이다. 그는 문제의 오찬 이외에도 다수의 경비 집행 및 공관 인사를 둘러싼 내부 직원들과의 갈등으로 본부 감사를 받고 있다.
현재는 미국을 위해 일하는 미국 사람이지만 김 전 대사는 성장 과정에서 한국 문화에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그와 B씨의 행동 차이는 외교관, 더 나아가 공직자 윤리에 대한 한국과 미국 시스템의 차이일 수밖에 없다.
차기 대통령 가능성이 50%를 넘는 클린턴 전 장관일지라도 이메일 사용에 의혹이 있다면 철저히 파헤치는 미국. 사후 변상하면 공금유용 의혹도 유야무야 마무리되기 십상인 ‘온정주의적’ 한국. 어쩔 수 없는 국력 차이도 있지만, 재외국민 보호 등 영사업무에서 한국과 미국의 차이가 확연한 것도 이 때문인 건 아닐까.
조철환ㆍ워싱턴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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