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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틀린 주장도 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입력
2016.04.08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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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매도 리포트가 없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가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투자보고서에 대한 상장사의 ‘갑질’ 논란에 대해 묻자 돌아온 말입니다. 증권사의 매수 리포트는 넘쳐나지만 매도 리포트는 찾기가 어려운 증권업계의 고질병이 애널리스트를 둘러싼 환경과 관련이 있다는 설명인데요. 7일에는 국내 32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이 ‘상장회사에 대한 애널리스트들의 합리적 비판이 가능한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취지의 공동성명서까지 발표했습니다. 증권업계에서 처음 있는 일입니다.

사건의 전말은 몇 주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교보증권 애널리스트 A씨가 하나투어에 대해 쓴 투자보고서가 발단이 됐습니다. A씨는 보고서에서 “면세점 사업이 실적 증가에 기여하기까지 애초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목표 주가를 20만원에서 11만원으로 대폭 하향 조정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습니다. 이 보고서를 본 하나투어 IR(기업설명회) 담당자는 분석 내용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A씨에게 강하게 항의했고, 심지어 기업 탐방을 아예 못하도록 하겠다는 발언까지 했다고 합니다.

애널리스트를 상대로 한 상장사의 갑질 논란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닙니다. 지난해에도 시내 면세점 선정과 관련한 보고서를 둘러싸고 현대백화점 관계자가 토러스투자증권 애널리스트에게 보고서 삭제하라고 항의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습니다. 분석 대상 기업들만 애널리스트와 보고서 내용을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이는 건 아닙니다. 얼마 전에는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쓴 계열 통신사의 인수 합병에 관한 보고서가 홈페이지와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 등에서 삭제됐습니다. 증권사 관계자는 “보고서 의도와 다르게 언론에서 해석하면서 내리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보고서가 기업에 불리한 내용으로 인용됐다는 겁니다.

이렇게 여기저기서 눈치를 주는 현실을 고려하면 매도 리포트가 없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금융투자협회에서 공시한 ‘증권사별 리포트 투자등급’ 비율을 보면 50개 증권사 중 매도 리포트 비중이 0%인 증권사가 무려 22개에 달합니다. 22개사가 주식을 사라고 하거나 계속 보유하라는 의견의 리포트만 냈다는 겁니다. 매도 리포트 비중이 10%를 넘는 증권사도 14개에 불과합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증시 부진과 정보의 홍수 속에 애널리스트가 설 자리도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실제 올해 1월 기준 58개 증권사 소속 애널리스트는 모두 1,064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지난해 초 1,156명에서 1년 새 100명 이상 줄어든 것입니다. 인공지능(AI)이 조만간 애널리스트를 대체한다는 암울한 전망도 부쩍 늘었습니다. 증권사의 ‘꽃’으로 불리던 것도 옛말이 되는 분위기입니다.

리서치센터장들은 이날 성명서에서 “투자자들이 시장의 다양한 의견을 접하기 위해서는 원활한 정보의 흐름이 전제돼야 한다”며 “백가쟁명식 토론과 함께 합리적 비판이 가능한 기반 위에서만 건전한 투자문화가 정착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언론이 통제된 사회가 제대로 발전할 수 없듯이 우리 자본시장도 다양한 목소리가 틀어 막힌다면 미래가 어두울 수 밖에 없을 겁니다. ‘틀린 주장도 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라’는 말이 있죠. 애널리스트가 본인의 이름을 걸고 쓴 보고서들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내려지는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송옥진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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