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장의 마지막 승부는 강렬하고 아름다웠다. 세상을 떠난 캐디를 위해 12년째 빠짐없이 해오고 있는 추모 의식도, 스스로에게 더 엄격했던 뛰어난 골프 매너도 팬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올해를 끝으로 마스터스 무대를 떠나는 67세 톰 왓슨(미국)의 마지막 도전이 그러했다.
왓슨은 8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GC(파72)에서 열린 마스터스 토너먼트 1라운드에서 버디 1개와 보기 3개로 2오버파 74타를 쳐 공동 43위로 출발했다. 왓슨은 2라운드 결과에 따라 마스터스 사상 최고령 컷 통과를 바라보게 됐다.
왓슨이 컷통과를 하게 되면 2000년 토미 애런이 63세의 나이로 거둔 마스터스 대회 사상 최고령 본선 진출 기록을 깨게 된다. 1949년생인 왓슨은 1977년, 1981년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는 등 8차례 메이저대회 타이틀을 차지했고,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통산 39승을 차지한 전설이다.
그는 2009년 디 오픈에서 우승을 눈앞에 뒀지만 마지막홀 보기로 스튜어트 싱크와 연장전을 벌인 끝에 아쉽게 준우승에 머문 적이 있다. 사상 최고령 우승을 놓치긴 했지만 그가 보여준 투혼과 집념은 전세계 스포츠 팬들에게 감동을, 젊은 선수들에게는 따끔한 자극을 주었다.
이날 왓슨은 경기 외적인 면에서도 팬들을 감동시켰다. 7번홀 그린에서 약 50㎝ 거리의 짧은 파퍼트를 앞두고 왓슨이 퍼터 헤드를 볼 뒤에 놓는 순간 볼이 움직였다. 논란의 여지가 있었지만 왓슨은 경기위원들과의 상의 없이 스스로 1벌타를 받고 홀아웃했다. 파가 될 상황이 보기로 변했다. 왓슨은 “내가 분명히 볼을 움직인 원인을 제공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왓슨은 13번홀에 도착하자 티잉 그라운드 옆 벤치에 에그 샐러드 샌드위치를 놓았다. 그가 마스터스에서 12년째 해오고 있는 특별한 의식이다. 지난 2004년 세상을 떠난 캐디 브루스 에드워즈를 추모하는 왓슨만의 전통이다.
왓슨과 에드워즈는 선수와 캐디 관계를 떠나 평생의 친구이자 동반자였다. 에드워즈는 30년 동안 왓슨의 백을 멨고, 루게릭병으로 투병하다 2004년 마스터스 1라운드 때 자택에서 사망했다. 에드워즈가 생전 마스터스에 출전할 때마다 13번홀 티잉 그라운드 옆 벤치에서 샌드위치를 자주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왓슨은 마스터스 1라운드 13번홀에 오면 떠난 친구를 그리워하며 이 같은 의식을 해오고 있다.
왓슨은 “샌드위치를 놓는 건 나만의 마스터스 전통”이라며 “에드워즈는 골프를 사랑했고, 캐디 일을 사랑했다. 특히 다른 어떤 곳보다 오거스타 내셔널에 오는 걸 좋아했다”고 말했다.
한편 디펜딩 챔피언 조던 스피스(23ㆍ미국)는 이날 보기 없이 버디 6개를 잡고 뉴질랜드 동포 대니 리(26) 등 공동 2위에 2타 앞선 단독선두를 달렸다.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앞둔 로리 매킬로이(27ㆍ북아일랜드)는 2언더파 70타로 공동 9위로 출발했고, 세계랭킹 1위 제이슨 데이(29ㆍ호주)는 공동 21위를 기록했다. 한국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이 대회에 출전한 안병훈(24ㆍCJ)은 목 부상 탓에 정상 컨디션을 발휘하지 못하고 합계 5오버파 77타로 공동 71위에 머물렀다.
김기중기자 k2j@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