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는 정동영 국민의당 전 의원 등 민청학련 사건 피해자 29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10억9,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고 7일 밝혔다. 피해자들이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1974년을 기준으로 손해배상 청구 시한이 지났다는 취지인데, 당시 시대상황을 무시한 판결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민청학련 사건은 박정희 정권이 불온세력의 사주를 받고 반국가단체 활동을 하고 있다며 180여명을 긴급조치 1호 등을 적용해 영장 없이 체포ㆍ구금, 구속기소한 사건이다. 2010년 12월 대법원이 긴급조치 1호가 위헌ㆍ무효라고 판단하자 정 전 의원 등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재판의 쟁점은 손해배상 청구권의 기준 시점이었다. 원칙적으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 발생을 안 날로부터 3년 또는 불법행위가 있었던 날로부터 5년까지를 청구시한으로 보지만 피해자가 청구권을 행사하는데 장애가 있을 경우 장애가 사라진 날부터 다시 소멸시효를 정한다.
1심은 국가정보원 과거사위원회가 민청학련 사건 조사결과를 발표한 2005년 12월을 청구권 행사 장애가 사라진 날로 보고 정 전 의원 등의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판단해 원고 패소 판결했다. 반면 2심은 대법원의 긴급조치에 대한 위헌ㆍ무효 판결 시점이 장애가 사라진 시점으로 보고 원고들의 청구권이 유효하다고 판단해 국가 배상을 주문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정 전 의원 등이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석방된 1974년에 이미 청구권 행사 장애가 사라졌다는 국가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2010년 긴급조치 1호를 위헌·무효라고 판단하기 전까지 손해배상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유죄 확정 선고를 받은 다른 피해자들과는 달리 정 전 의원 등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기 때문에 재심 청구 이외에도 배상 받을 방법이 있었는데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회 긴급조치변호단 이상희 변호사는 “검사의 기소 여부에 따라 청구권이 제한되는 것으로 형평성에 맞지 않으며, 법원이 긴급조치를 적용해 유죄판결을 내리던 상황에서 기소유예로 석방된 피해자들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논리”라고 비판했다.
조원일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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