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예술이 예술가 자신에게 충족감을 준다면 뮤지컬은 완벽한 쇼를 해야 하더라고요. 직접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제대로 몰랐을 사실이죠.”
지난해 이 맘 때 공연계 화제는 단연 뮤지컬‘팬텀’이었다. 박효신 류정한 카이 등 걸출한 스타 캐스팅보다 화제였던 건 소프라노 임선혜가 주인공으로 나선다는 사실이었다. ‘고(古)음악계 디바’로 불린 그가 수년간의 러브콜을 이기지 못하고 작품 출연을 결정한 데 대해 기대와 우려가 컸다. 석 달 공연은 만석이었고 지난해 가을, 다시 보란 듯 고음악 앨범 ‘오르페오’(하모니아 문디)를 발매했다.
임선혜씨는 6일 서울 논현동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그 작품 출연 후 클래식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뮤지컬 팬들이 많다”고 말했다. “공연 전에는 뮤지컬과 클래식 관객층이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한데 작년 10월 음반 발매 공연 때 뮤지컬 보고 왔다는 팬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놀라운 건 그 분들이 음반을 다 ‘공부’하고 오셨다는 거죠.”
임선혜씨가 이번에는 슈베르트,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 독일 가곡으로 내한한다. 한달 전 매진된 서울 예술의전당 공연(10일)을 시작으로 15일 대구, 17일 부산, 19일 울산으로 이어진다. 가곡 반주의 대가 헬무트 도이치의 러브콜로 성사된 공연으로, 두 사람이 한 무대에 서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경험이 워낙 많은 분이라서 조언을 많이 해주세요. 제가 배울 게 훨씬 많죠. 하지만 가수가 먼저고 당신은 반주를 위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확실하죠. ‘반주 피아니스트’라는 말을 싫어하는 분도 많거든요.” 두 사람은 지난해 10월부터 오스트리아 빈과 독일 베를린에서 연습해왔다.
임선혜는 독일 카를스루에 국립음대 유학 중 고음악 거장 헤레베헤의 공연에 대타로 캐스팅 돼 일약 스타가 됐다. 이후 야콥스, 호그우드 등 지휘자들의 무대에 서며 유럽 고음악계에서 ‘황금의 목소리’로 인정받았다. 국내에 다소 생소한 바로크, 고전파음악에 정통한 그는 대학시절 독일 낭만 가곡을 잘 불렀다. 국내 슈베르트 콩쿠르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이를 계기로 초대된 국제 슈베르트 콩쿠르에서 여자부 2위, 청중상을 받았다.
임선혜는 이번 공연에서 20년 만에 그 곡들을 부른다. 슈베르트의 ‘봄에 대한 믿음’ ‘송어’, 슈트라우스의 ‘세레나데’ ‘아무르’ 등 귀에 익숙한 가곡 외에도 말러의 ‘여름의 임무교대’ 등 한국에서 자주 연주되지 않는 곡도 선보인다. 임선혜는 “20대 때 가슴으로 가사를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20년간 유럽에서 활동하니 그때 몰랐던 숨은 뜻이 보이면서 더 절절히 와 닿는다”고 말했다.
공연 2부에는 로드리고 등 스페인어권 작곡가들의 노래도 부른다. 헬무트 도이치가 임선혜의 성량에 맞춰 추천한 곡들로 로맨틱하고 사랑스러운 선율이다. “독일 가곡이 비유가 많고 간접적인데 비해서 스페인 가곡은 표현이 직접적이죠. 처음 듣더라도 한국 관객들은 금방 공감할 수 있을 거에요.”
세계를 오가는 떠돌이 생활이 성악가의 생존 조건임을 그때도 알았다면 슈베르트 콩쿠르에 나갔을까. 임선혜는 “알았더라면 헛꿈을 꿨을 거”라고 말했다. “소프라노는 생명이 짧거든요.(웃음) 전성기는 30대 후반부터 15년 정도고 이건 위로가 되기도 하고 목표가 되기도 해요. 저를 많이 불러줄 때까지 열심히 노래하고 다음에 새 인생을 기획하는 것도 가슴 벅찰 거 같아요.”(02)2183-1278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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