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성 강조한 평소 입장 변화
새누리 총선 공약에 화답 관측
‘건전재정론자’를 자처하는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재정 건전성에 여유가 있다”며 재정을 풀어 경기를 살리는 방안을 언급했다.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 등 여권에서 확장 재정을 줄기차게 요구한 것에, 유 부총리가 긍정적으로 화답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총선 후 돈 풀기가 예고되는 대목이다.
유 부총리는 6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진행된 한 강연에서 강봉균 위원장의 확장적 재정운용 요구에 대해 “일리가 있다”며 “재정을 경기 대응적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 경제정책의 컨센서스(일치된 생각)”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재정건전성에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며 “너무 과하면 자동으로 재정적자 폭이 늘어날 수 있으나 지금은 재정을 활용하지 않으면 경제정책에 반하는 것이어서 선을 잘 유지하며 가야 한다”고 말했다.
유 부총리의 이날 발언은 재정학자 출신으로 재정건전성을 우선순위에 두던 평소 발언과는 상당히 다른 맥락이다. 그는 2월 중순 대정부질문에서 “확장 재정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했고, 2월말 주요20개국 재무장관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에게 “다른 회원국들이 다들 ‘한국은 여유가 좀 많지 않냐’는 식이었지만 건전재정론자인 나로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유 부총리의 이런 입장 변화는 새누리당 선거사령탑인 강 위원장이 최근 총선 공약 등을 통해 재정의 역할을 강조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 주목된다. 강 위원장은 앞서 한 언론인터뷰에서 “정부가 시작한 인프라 사업의 공기(工期)를 맞추고 인력 질을 높이는 지출을 과감히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강 위원장은 지출 확대에 따른 재정건전성 악화 문제에 대해서는 “경기가 살면 세수 증가로 적자가 상쇄된다”며 재정의 마중물 역할을 강조했다. 더구나 지난해 국가부채가 70조원 이상 불어나고 관리재정수지가 6년만에 가장 큰 폭의 적자를 기록했다는 통계가 발표된 다음 날 나온 발언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는 평가다. 이에 대해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부총리가 얼마 전에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고 했다가 갑자기 재정 확대 얘기를 하는 것은 앞뒤가 잘 맞지 않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세종=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