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의 한 지역구는 후보가 군청소재지만 돌아다니는 데 무려 일곱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10분이면 웬만한 요지를 돌 수 있는 서울 도심 지역구와는 공간적 범위에서 너무나 큰 차이가 난다. 그래서 후보들이 사람들이 많이 모일 만한 날과 장소를 살펴 드문드문 집중적으로 유세를 할 수밖에 없다. 유권자와 후보들의 접촉이 뜸하다 보니 주민들도 후보가 누군지 잘 모를 정도다. 선거운동 기간인데도 후보는 물론이고 선거운동원 보기조차 어려운 지역이 한두 곳이 아니라고 한다.
이른바 공룡 선거구로 불리는 강원 홍천ㆍ철원ㆍ화천ㆍ양구ㆍ인제 지역구의 선거 풍경이다. 5개 지역에 위치한 시ㆍ군청을 연결한 이동거리가 320km나 된다. 이 지역구의 면적(5,697㎢)은 서울의 10배, 최소면적 선거구인 서울 동대문을의 948배에 이른다. 후보들은 5일장이 서는 장터나 유권자가 모일만한 행사장을 찾아 선거운동을 펼치다 보니 ‘장돌뱅이 선거운동’이니, ‘메뚜기 선거운동’이니 하는 말을 듣는다. 자연히 후보들의 선거운동에 힘이 빠지고, 선거운동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이곳만의 문제가 아니다. 강원 태백ㆍ횡성ㆍ영월ㆍ평창ㆍ정선 지역구도 홍천ㆍ철원ㆍ화천ㆍ양구ㆍ인제 지역구 못잖다. 지역구 면적도 큰 차이가 없고, 군청소재지만 도는 데도 6시간 이상 걸린다. 전남 해남ㆍ완도ㆍ진도 지역구는 100개가 넘는 섬이 있다고 하니 후보들이 인구가 적은 지역은 아예 선거운동을 포기할 판이다. 해안도서지역의 선거운동 사정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라지만 선거구 인구 편차 허용범위를 2대1로 제한, 농어촌 지역의 선거구가 대거 통폐합된 이번 총선에서 한층 뚜렷해졌다. 인구 비례만 따져 선거구를 짜맞춘 결과이자, 여야가 이해 줄다리기와 정쟁으로 막판 초읽기에 몰려 황급히 선거구를 획정하다 보니 면적과 지세, 교통 등의 다른 변수를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때문이다.
이토록 넓은 선거구를 내버려두어서는 유권자의 선거 무관심, 정치 무관심을 방치하는 것과 다름없다. 유권자들이 후보의 인물 됨됨이나 정책을 제대로 챙겨보기 어렵다면 투표의욕 또한 줄어들게 마련이다. 이런 선거를 통해 뽑혀 국회의원이 되더라도 ‘지역구 관리’가 어렵고, 주민 이해를 대변하는 데도 어려움이 따른다.
이번 총선이야 할 수 없지만, 문제점이 분명히 확인된 만큼 20대 국회는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 공룡 선거구가 집중된 농어촌 지역 국회의원의 지역 대표성이 이름만 남게 되는 마당이라면, 중ㆍ대선거구제나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 새로운 선거제도로의 전환 필요성을 더는 외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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