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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려함의 성곽… 정조의 꿈이 담긴 신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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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려함의 성곽… 정조의 꿈이 담긴 신도시

입력
2016.04.0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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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개혁 이상향이 구현된 수원화성.
정조의 개혁 이상향이 구현된 수원화성.

수원화성은 꿈의 신도시였다. 정조의 개혁 이상향이 구현된 곳이다. 220년 전 당시의 최신 공법과 디자인이 총동원된 성이었고 시가지였다. 1997년 등재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타이틀이 아니더라도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유산이다. 정조의 지휘 아래 정약용 등 수 많은 현인들의 아이디어가 집약돼 나온 결과물이다. 수원화성을 걷는 건 그분들의 꿈을 걷는 것이다.

아니 그런 거창한 수사가 아니어도 좋다. 흐드러진 꽃이 함께 하는 수원화성에는 아름다운 풍경, 맛있는 음식, 신명 나는 골목과 전통시장도 함께 한다. 게다가 서울에서 가깝다. 꽃피는 4월 최적의 주말 나들이 코스다.

올해는 수원화성 방문의 해

축성 220주년을 기념해 올 한해는 ‘수원화성 방문의 해’로 지정돼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성곽의 총길이는 5.7㎞. 성벽을 따라 평소의 속도대로 걸으면 1시간 30분이면 충분하지만 그 성곽이 품은 아름다운 구조물 하나하나를 감상하고 가다 보면 하루가 부족하다. 정조는 화성을 세울 때 “미려(美麗)함은 적에게 두려움을 준다”고 했다고. 적도 놀라 경외감이 들만큼 아름답게 지은 성이다.

수원화성 투어의 시작은 화성열차가 출발하는 창룡문이 좋다. 화성열차를 이용하면 편히 앉아 수원화성을 구경할 수 있지만 되도록이면 걸어가길 권한다. 창룡문에서 연무대를 지나면 화홍문이다. 아름다운 무지개 문이란 이름의 화홍문은 수원화성과 수원천이 만나 만들어진 수문. 다리의 역할까지 하는 수문에 누각까지 올렸다. 화성 건축의 백미로 꼽히는 곳이다. 이 화홍문에서 수원천을 따라 이르는 양 옆엔 버드나무가 길게 늘어섰다. 하지만 꽃가루 때문인지 너무 심하게 가지를 쳐 보기가 민망할 지경이다. 자고로 수원천은 버드내라 불릴 만큼 버드나무가 많았다고.

화홍문에서 서울의 숭례문보다 크다는 장안문을 거쳐 화서문으로 이어진다. 이때는 성 안이 아닌 성 밖으로 나가보자. 각기 크기와 모양이 다른 돌들을 절묘하게 끼워 맞춘 성벽 자체의 미(美)에 빠져보는 시간이다.

왕의 별장 수원 행궁

수원행궁 전경.
수원행궁 전경.
수원행궁 입구.
수원행궁 입구.
행궁마당에서 펼쳐지는 무예24기 시연.
행궁마당에서 펼쳐지는 무예24기 시연.

팔달산 정상에 있는 서장대에 이르면 성의 안팎이 한 눈에 들어온다. 서장대 바로 아래쪽에 왕이 행차할 때 머물렀던 임시 거처인 행궁이 있다. 화성행궁은 조선시대 최대 행궁이자 행궁 문화의 걸작으로 꼽힌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의 현륭원에 옮기면서 수원화성 신도시를 건설하고 성곽을 축조했다. 정조는 11년간 13차례 능행을 했고 이 때마다 화성행궁에 머물면서 여러 행사를 거행했다.

봉수당은 화성행궁의 중심 건물이다. 임금이 행차 때마다 정전으로 쓰였던 건물이다. 이곳에서 어머니 혜경궁홍씨의 회갑연을 치른 후 ‘봉수당’이란 편액을 걸게 됐다.

행궁 바로 옆에는 120년 역사의 고종 때 세워진 신풍초등학교가 있다. 행궁을 허물고 세운 학교다. 당시 행궁에서 헐리지 않은 건물은 봉수당 옆 노래당이 유일하다고. 정조가 왕위를 넘겨준 뒤 내려와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싶다고 지은 이 건물이 남은 건 일제가 군청 사무실로 쓰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오전 11시 행궁의 정문 앞 마당에선 무예24기 시연이 펼쳐진다. 무예24기는 정조의 명을 받아 실학자 이덕무 박제가와 무예의 달인 백동수가 편찬한 ‘무예도보통지’의 24가지 무예를 말한다. 조선 전래의 무예는 물론 중국과 일본의 우수한 무예를 적극 수용해 24기로 정리한 것이다. 무술 시연이다 보니 여느 궁궐의 수문장 교대식과 비교해 훨씬 다이내믹해 볼만하다.

다시 꿈 꾸기 시작한 수원화성의 거리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의 내부.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의 내부.
행궁동에 여전히 많이 남아있는 점집들.
행궁동에 여전히 많이 남아있는 점집들.
수원행궁앞 공예거리.
수원행궁앞 공예거리.
행궁동 벽화골목.
행궁동 벽화골목.
노을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수원화성의 풍경. 수원시청 제공
노을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수원화성의 풍경. 수원시청 제공

행궁 광장 옆에 최근 지어진 현대식 건물은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이다. 전통과 현재가 소통하는 공간이란 주제로 건립된 미술관은 주변의 경관과 어울리도록 높이를 낮췄고 기하학적인 현대미를 최대한 살렸다. 옥상의 정원은 화성행궁을 내려다 보는 최고의 전망대이기도 하다. 수원화성과 행궁을 둘러보다 쾌적한 그늘이 필요할 때 예술 감상을 겸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행궁광장에서 팔달문까지는 공예거리다. 마을해설사 김중배(67ㆍ여)씨는 “예전 빈 가게가 많았는데 행궁이 완성된 이후 공방이 많이 들어서며 골목이 살아났다”고 했다. 길 가엔 공동 우물이자 마을의 사랑방 역할을 했던 한데우물과, 영화 ‘사랑방손님과 어머니’를 찍었던 집이 그대로 남아있다. 공예거리 한쪽의 좁은 골목엔 벽면의 액자형 화단이 이색적이다. 사진 찍는 이들이 많이 찾는다.

행궁동에는 수원화성 건설과 함께 생긴 길이 그대로 남아있다. 성을 짓기 위해 돌을 실은 수레와 인부가 다니던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길엔 작가가 주민들과 함께 상의해 그린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풍성한 해바라기 벽화도 있고, 아리따운 여인이 꽃밭을 스치며 자전거를 타는 그림도 있다. 자전거 여인의 그림은 이 집에 고우신 할머니가 사시는데 작가가 이 할머니가 소싯적엔 이리 아름다웠을 것이라고 상상해 그린 것이라고.

행궁동은 2013년 한 달간 차 없는 마을사업을 벌였던 생태교통 시범마을이다. 이를 기점으로 주민들의 마을 만들기가 활성화했고 이후 마을이 완전히 달라졌단다. 쓰레기 더미가 쌓였던 곳에 자투리 화단, 도시텃밭 등이 조성되는 등 마을 전체가 화사해졌다.

또 이 마을엔 점집이 유독 많았다. 아직도 길가 곳곳엔 희고 빨간 깃발을 내건 점집들이 여럿이다. 하지만 마을이 밝아지면서 점집들 상당수가 떠나고 있다고. 대신 공방들이 그 자리에 들어오고 있단다.

김씨는 “예전엔 주민들 상당수가 떠날 생각만 했는데 이젠 그냥 살고 싶어한다”고 했다. 구도심 쇠락의 쓰라린 기억을 지닌 수원화성의 마을들이 이제 다시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수원은 낮보다 밤이 아름답다. 해질 무렵 찾을만한 전망대가 있다. 최근 일반에 개방한 지동의 수원제일교회 첨탑이다. 노을전망대란 이름이 붙은 이곳에선 수원화성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이름 대로 노을 지는 시간에 맞춰 오르면 저녁이 차분히 내려앉은 수원화성을 감상할 수 있다. 8~13층의 첨탑 부분을 개조해 갤러리와 전망대로 사용한다. 등대를 오르듯 동그랗게 감아 올라가는 계단길도 이색적이다. 교회 입구에서 이야기하면 첨탑에 올라갈 수 있는 열쇠를 받을 수 있다.

이성원기자 sung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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