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 내리막에 철수 루머까지
친근한 토종 느낌 살려 재도약
‘글로벌 자존심은 뒤로” 고육책
국내 대표적인 외국계 시중은행인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이 6일 돌연 “앞으로는 대내외 업무에서 한국SC은행이란 명칭 대신 SC제일은행을 사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2005년 영국 SC그룹이 제일은행을 인수한 뒤 한동안 함께 쓰던 옛 은행명(제일은행)을 2012년 완전히 떼어버린 지 4년 만에 다시 옛 이름을 사용하겠다고 나선 겁니다.
SC은행은 앞으로 영업점 간판은 물론, 각종 홍보물, 온라인 콘텐츠, 사무용품 등에까지 ‘SC제일은행’ 이름을 갈아 끼울 예정입니다. 이렇게 대대적인 브랜드 교체 작업을 하려면 비용도 꽤 많이 들어갈 텐데요. 굳이 제일은행이라는 옛 이름을 다시 꺼내든 이유가 뭘까요.
SC은행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과거 제일은행 시절부터 거래해온 전통 고객은 물론, 신규고객들도 제일은행에 대한 브랜드 인지도와 친밀도가 압도적으로 높다는 내부 조사결과에 따른 것”이라고요. 그간 ‘SC제일은행노동조합’이라는 이름을 지켜왔던 노조 역시 “브랜드에 제일을 넣어야 한다는 노조의 요구에 화답한 경영진의 결단을 환영한다”고 밝혔습니다.
지금은 신한ㆍKB국민ㆍKEB하나ㆍ우리은행이 흔히 4대 은행으로 불립니다만 1990년대만 해도 조흥ㆍ상업ㆍ제일ㆍ한일ㆍ서울은행, 이른바 ‘조ㆍ상ㆍ제ㆍ한ㆍ서’ 5개 은행이 국내 은행권의 대표 격이었습니다. 그 중 제일은행은 1990년대 중반 3년 연속 법인세 납부 실적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잘 나갔습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와중에 경영이 악화돼 결국 외국자본에 팔리게 됐고, 이후 이렇다 할 반등 없이 계속 자산ㆍ수익 규모가 줄어드는 내리막길을 타고 있습니다. 최근엔 모그룹의 경영난까지 닥치면서 “SC은행이 조만간 한국을 떠날 것”이란 루머가 끊이질 않고 있죠.
금융권은 이번 명칭 변경을 SC은행의 고육지책으로 보는 분위깁니다. 한국에서 살아남으려면 글로벌 은행의 자존심을 버리고라도 친근한 토종 느낌을 살릴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는 겁니다. SC은행은 다만 등기상 법적 명칭은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으로 유지해 SC의 ‘본 색깔’은 내부적으로나마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름만 바꾼다고 되는 건 아니겠죠. ‘SC제일은행’이 어떤 변화를 보일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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