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젤 탈 쓴 늑대? 벤처 거물 호창성 구속
벤처기업 지원금을 미끼로 지분을 챙긴 범죄자인가, 관행을 따랐던 억울한 희생양인가.
벤처업계 거물 호창성(41) 더벤처스 대표가 정부 보조금을 받아주겠다며 5개 스타트업(신생 창업기업)의 30여억원 상당 지분을 가로챈 혐의(특가법 상 알선수재 등)로 구속되면서 벤처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검찰은 호 대표가 중소기업청이 운영하는 민간주도형 기술창업지원사업 ‘팁스(TIPS)’를 통해 스타트업의 지분을 가로챘다는 입장이다. 팁스는 운영사로 선정된 엔젤투자사(자금과 경험이 부족한 벤처기업을 육성하는 회사)가 될 성 부른 스타트업을 선정해 1억원을 투자하고 투자에 대한 보상으로 지분을 받는 구조다. 운영사의 선택을 받은 스타트업은 정부로부터 5억원 가량의 기술개발자금을 지원받아 창업에 도전하게 된다. 더벤처스는 2014년 중기청으로부터 운영사로 선정돼 총 6개 스타트업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운영사는 스타트업 지분 20%까지 합법적 취득이 가능하다.
그러나 검찰은 6일 호 대표가 규정 이상의 지분을 가져갔다는 증거와 진술을 확보해 수사에 나섰다고 밝혔다. 호 대표는 또 스타트업으로부터 무상으로 지분을 양도 받은 것을 숨기고 투자계약서를 허위로 꾸며 정부 보조금 20억여원을 가로챈 혐의(사기)도 받고 있다.
호 대표에게 유죄가 선고되면 벤처업계에 미칠 파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그가 엔젤투자자로 변신하기 전 ‘벤처의 설움’을 겪은 뒤 이를 딛고 일어난 대표적 성공 사례이기 때문이다. 호 대표는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전문대학원(MBA) 유학 시절인 2007년 부인과 함께 동영상 자막서비스업체 비키를 설립, 2013년 2억달러(약 2,300억원)에 일본 오픈마켓 라쿠텐에 매각하며 국내 벤처투자 신화를 썼던 인물이다. 벤처업계 유명인사가 돈도 제대로 주지 않고 스타트업의 지분을 가로챘다면 도덕적인 비난을 면할 수 없다.
다만 벤처업계에선 호 대표의 지분 취득이 업계 관행이라는 옹호론도 나온다. 한 벤처업체 관계자는 “스타트업은 참고할 실적이 없기 때문에 기업가치 평가를 내리기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엔젤투자자와 스타트업 사이의 딜을 통해 기업가치와 투자 후 취득 지분을 결정하는 것이 업계 관행”이라며 “업계에는 호 대표가 이런 관행에 따라 지분을 가져갔을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고 전했다. 호 대표 측도 검찰의 수사가 벤처 생태계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더벤처스는 5일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팁스 운영사 가이드라인에서 벗어나는 일체의 행위를 저지른 적이 없으며, 이는 명백히 검찰의 주장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이현주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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