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엔 길 바닥에서 울근불근 싸움질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수 있었다. 싸움은 대개 “너 나이가 몇 살인데, 감히”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그러면 상대는 곧 “어디 한 번 까 볼까나, 내 나이가…” 이런 순으로 흐른다. 아니면 “나잇살이나 먹은 노인네가…”로 변하기도 한다. 싸움이 일어 난 원인은 사라지고 나이타령으로 싸움을 하는 거다. 이런 식의 싸움은 시정에 무식한 사람들만의 소행들이려니 여기지 마시라. 우리나라 저 위에 높은 분들도 예외 없이 나이를 앞세우며 쌈질들을 해댄다.
쓴웃음을 나게 하는 이런 현상은 선거 때도 예외가 아니어서 나이를 앞세우며 서로를 비방하는 정치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제 나이 싸움도 고령화 사회답게 진화해서 “네 나이가 많으니 적으니”에서 “누가 더 늙었느니 아니니”로 변했다. 몇 해전에는“60, 70대 노인들은 투표 안 하고 집에서 쉬셔도 된다”고 했던 유력정치인이 호되게 역풍을 맞는 모습도 봤다.
몇 해전, 고교 동창회에서 초청한 연사를 내가 모시고 간 적이 있다. 전 걸스카우트 총재이고 호스피스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각당복지재단 김옥라 이사장이다. 함께 차를 타고 동창회장으로 향하는 차에서 김 이사장이 부탁을 하나 하겠다고 하셨다. “당신 나이를 밝히지 말아 달라”는 거였다. 순간 ‘90이 넘은 나이에도 나이를 감추고 젊은 체를 하자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어 당황했다. 하지만 곧 바로 오해로 밝혀졌다. “90이 넘은 내 나이를 밝히면, 청중들은 내 얘기는 듣지 않고, 온통 내 나이에만 관심을 두다가 정작 내 얘기는 흘려버리고 말더라”는 것이었다. 수긍이 가는 부탁이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사람의 됨됨이를 그리고 그 사람의 주장하는 바를 따져봐야 할 때에도 나이가 그 판단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때가 너무 많다. 어쩌면 ‘노인은 그저 뒷방에만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 잡혀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 나이’에도 사회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노인이 신기해서 그러는 걸까, 아니면 밉상이라서 그러는가.
어김없이 올해 총선에서도 나이타령이 나왔다. 나는 정치에 그리고 세상과 지구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소소한 개인의 옳고 그름에 관심이 있는 소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나이를 들먹이며 서로를 비방하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한심하다. 한쪽 정당에서 조목 조목 나이를 빗대어 상대 유력 정당인을 비난했다.“집에 앉은 노인” “완전 허수아비” “노년에 조금 안타깝다” 등 나이를 앞세워 상대방 고령 정치인을 폄하하는 발언을 하고 있었다. 이 지점에서 내가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비방 당하는 당의 노인은 73세고, 비방하는 당의 우두머리는 76세라는 사실이다.
지금 대선을 치르는 미국의 선거를 보면서, 흥미로운 사람을 봤다. 세계적인 문제로 부상한 양극화 문제 등을 해결하겠다고 나선 버니 샌더스 말이다. 이 사람의 정견과 그가 살아 온 이력을 보면, 나도 혹하고 미국의 젊은이들도 열광한다. 그런데 이 사람의 나이가 75세다. 우리 나이로 치면, 76세일 거다. 미국 대선 후보 중 가장 고령이지만 어느 후보보다 젊은이들의 지지를 받는단다. 그것은 나이와 상관없이 오로지 그 사람의 주장 정책 그리고 그가 실천해 온 삶의 궤적을 보고 열광하는 거다.
우리 사회도 이젠 나이를 들먹이며 싸우기 보다는, 그 사람 주장의 옳고 그름을 논할 정도는 성숙해졌다. 더 나아가 우리 유권자들도 그 사람이 살아 온 궤적에서 얼마나 자기 주장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던가에 초점을 맞춰 후보를 판단할 정도의 양식은 갖추고 있다고 믿는다. 100세 시대가 다가왔는데도 사람의 나이가 많고 적음을 들먹이다가는 그거야 말로 ‘폭삭 늙고 시대에 뒤떨어진 노인’으로 낙인 찍히기 십상인 시대에 우리는 와 있다.
고광애 노년전문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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