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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삼의 후예'는 약과... '인간 PPL'까지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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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삼의 후예'는 약과... '인간 PPL'까지 등장

입력
2016.04.06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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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 속 유시진(송중기)대위는 해외로 파병을 갔는데도 홍삼을 즐겨 먹는다. KBS 방송화면 캡처
KBS2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 속 유시진(송중기)대위는 해외로 파병을 갔는데도 홍삼을 즐겨 먹는다. KBS 방송화면 캡처

KBS2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우르크’로 파병간 특전사 부대원들이 가장 즐겨 먹는 음식은 건빵이 아니라 홍삼이다. 유시진(송중기) 대위는 해외 배송으로 현지에서 홍삼을 받아 전장에서 홍삼이 담긴 비닐막대(스틱)를 입에 물고 다닌다. 특전사 후임들의 간식도 홍삼이다. 군인 뿐만이 아니다. 의사와 간호사 커플로 나오는 송상현(이승준)과 하자애(서정연)는 서로 홍삼 스틱을 입에 물고 달빛 데이트를 즐긴다. 낯선 땅 극한의 환경 속에서 군인들의 전우애와 의사들의 사랑을 꽃피우게 하는 건 홍삼이다. 홍삼 제조사가 ‘태양의 후예’ 제작을 지원해 벌어진 일이다. 노골적인 간접광고(PPL)로 방송 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태양의 후예’ 저 나라(우르크)는 먹을 게 부족한데 홍삼은 넘쳐나는 나라인가보다’, ‘다 좋은데~. (송)중기 홍삼 너~~~무 많이 먹는 듯’ 등 네티즌의 쓴 소리가 올라왔다. PPL이 많다 보니 ‘태양의 후예’가 아니라 ‘PPL의 후예’란 비판 섞인 우스개까지 나온다.

KBS2 일일드라마 '다 잘될 거야'에는 간접광고업체 사주(오른쪽에서 두 번째)까지 등장한다. KBS 방송화면 캡처
KBS2 일일드라마 '다 잘될 거야'에는 간접광고업체 사주(오른쪽에서 두 번째)까지 등장한다. KBS 방송화면 캡처

간접광고사 사주가 드라마에…대사로 제품 기능 설명까지

드라마 속 PPL이 도를 넘어섰다. 제품을 드라마에 노출한 ‘태양의 후예’는 그나마 ‘양반’ 수준이다. 심지어 ‘인간 PPL’까지 등장했다. 간접광고를 의뢰한 회사의 사주가 버젓이 드라마에 출연하는 일까지 벌어진 것이다. 최근 KBS2 일일 연속극 ‘다 잘될 거야’에서는 C건강식품회사의 회장이 등장했다. 극중 배동숙(조미령)이 “우리 회사 사장님”이라고 금만수(강신일)에게 소개까지 해 시청자를 아연실색하게 했다. 드라마에 나온 건강식품회사 회장은 책상 위에 펼쳐 있는 책자를 연기자들과 보며 “장을 불편하게 하는 유해균은 잡고”란 말까지 한다. 홈쇼핑 광고가 따로 없다.

‘다 잘 될거야’는 지난 2월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제47조2항2ㆍ3호 간접광고) 위반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로부터 법정제재인 경고 처분을 받았다. 방통심의위 관계자는 6일 “광고주가 직접 드라마에 출연하는 간접광고는 우리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며 “보통 PPL 위반엔 주의 조처를 내리는데, 간접광고주까지 출연해 제품의 특성이나 장점까지 노골적으로 홍보해 처벌 수위를 경고로 높였다”고 설명했다. 지상파 방송사에서 일하는 드라마 PD들에 따르면 최근 들어 PPL 계약을 할 때 광고주 출연을 특별 조건으로 내거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

공영방송이 제작한 드라마에 ‘인간 PPL’까지 등장한 건 PPL 규제에 대한 보호막이 무너진 탓이다. 방통심의위는 지난 2009년 방송사 광고 확대를 위한 규제 완화 차원에서 PPL을 허용했다. 간접광고 자체를 금지하다 상표 노출 시간을 방송 시간의 5% 이내로 하면 봐주는 식으로 규제 수위를 대폭 낮췄고, 이로 인해 방송에서 PPL은 우후죽순처럼 늘고 있다. 드라마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PPL의 영향이 덜했던 예능프로그램도 ‘PPL 천하’가 됐다. 방송관계자들 사이에서 “출연자들이 휴대폰 게임을 하면 PPL을 의심해 봐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제작진이 휴대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연예인들이 게임을 하는 상황을 빌어 PPL을 주로 노출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전파를 탄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에서 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 규현이 휴대폰으로 검색을 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여러 번 잡히며 특정 회사의 휴대폰을 간접적으로 알린 게 한 예다.

PPL의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편법이 다양해지면서 연예인들도 속을 태우고 있다. 한 유명 남자 배우의 매니저는 “출연 중인 예능프로그램이 특정 의류 브랜드 광고 협찬을 받아 출연하는 방송인들이 단체복처럼 해당 브랜드 의상을 입어야 한다”며 “정작 우리가 광고 모델로 활동하는 의류 브랜드 옷을 입지 못해 난감할 때가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규제 강화 필요… “중간 광고 규제 풀어야” 목소리도

방통심의위에 따르면 지난해 지상파 3사의 광고효과 위반 제재 건수는 총 55건이다. 2010년 13건과 비교해 40여 건이 많아진 수치다. 간접 광고 규제가 완화된 뒤 위반 사례가 4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지난해 지상파 3사 중 PPL 심의 위반을 가장 많이 한 곳은 MBC(25건)였다. 2010년(2건)과 비교해 제제 건수가 약 13배나 폭증했다. 한국방송협회에 따르면 지난 1~2월 지상파 3사의 광고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약 24%가 줄어 월 평균 1,000억원을 밑돌았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1월 이후 17년 만의 최저치다. 방송 제작비 재원 확보차원에서 무리하게 PPL을 진행하다 보니 규제가 완화됐음에도 위반 건수는 늘고 있다.

가장 피해를 보는 건 결국 시청자다. 맥락 없이 등장하는 PPL에 무방비로 노출돼 불편할 뿐 더러, 작품 몰입까지 방해 받는다. 김경환 상지대 언론학부 교수는 “광고주를 드라마에 출연시키는 건 방송이 지닌 신뢰성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일”이라며 “관련 규제 신설은 물론 단일 상품의 노출빈도와 노출 시간에 대한 규정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봤다. 간접 광고 규제는 더 강화하되, 중간 광고를 허용해 방송사의 숨통을 튀어줘야 한다는 현실론적인 의견도 나왔다. 정미정 공공미디어연구소 부소장은 “시청자 입장에선 프로그램과 광고의 구분이 불명확한 PPL이 더 문제”라며 “프로그램과 광고의 구분을 명확히 하고 방송사 재원을 확보할 수 있는 중간광고를 열어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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