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N 드라마 ‘미생’의 천관웅 과장으로 이름을 알린 배우 박해준(41)이 첫 주연 영화를 선보인다. 스포츠계에 만연한 폭력을 조심스레 꺼내든 영화 ‘4등’(13일 개봉)에서 비운의 수영 천재 광수를 연기하며 스크린 중심에 섰다.
5일 서울 세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해준은 “첫 주연작이라고 해서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은근히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거침없고 자유분방 하지만 연민이 가는 광수 역할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4등’의 광수는 게으른 천재였다. 타고난 재능 때문에 노력하지 않아도 대회마다 1등을 놓치지 않던 열 아홉 살 광수는 일찌감치 국가대표에 발탁된다. 하지만 선수촌 입촌을 미룬 일로 대표팀 박 감독(유재명)의 매질과 맞닥트린 뒤 스스로 선수촌을 박차고 나오고 그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한다.
흑백 화면 속 과거의 광수가 현재의 모습으로 바뀌는 컬러 화면 속에서 박해준은 넋 나간 표정을 짓는다. 16년의 세월 동안 그가 어떻게 살았을지 단박에 보여주는 연기다. 광수는 시종일관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수영장을 누비며 만년 4등 준호(유재상)을 가르친다. 세상과 불화한 비운의 스타 그 자체다. 꼬여버린 인생에 대해 악다구니를 쓰듯, 준호에게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 대목에선 측은함마저 느껴진다.
박해준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선수촌 입단을 미뤘으면서도 자기 반성 없는 광수를 표현해내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광수가 (선수촌을 나오지 않고)아시안게임에 나갔더라도 지금과 같은 삶을 살았을 거라 상상하면서 연기를 했다”고 덧붙였다.

재능을 제대로 발휘를 못하는 준호에게 결국 체벌을 가하는 광수의 모습은 씁쓸하다. 관객은 광수를 통해 폭력이 별다른 성찰 없이 전이되는 현실을 목격하게 된다.
“실제로 유재상군을 때리는 장면에서는 힘들었어요. 그 친구가 보호대를 착용하고는 있었지만 어른들의 욕심 때문에 아이에게 상처가 되진 않을 지, 영화에서 이런 장면이 어떻게 비춰질 지 고민되더라고요.”
그는 영화 ‘화차’에서 사채업자를 연기했고,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에선 저격수 역할을 맡았다. SBS 드라마 ‘닥터 이방인’에서는 북한 대남공작부 요원을 표현하기도 했다. 개성 있는 인물을 소화하며 충무로의 눈도장을 받았다. ‘4등’의 정지우 감독은 ‘화차’ 속 박해준을 눈여겨보고 ‘4등’에 그를 캐스팅했다. 박해준은 “사연 있고 연민이 가는 캐릭터에 일단 눈이 간다”며 “‘4등’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관객들이 더 큰 공감을 얻을 것으로 본다”고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다음은 박해준과의 일문일답.
-광수 역을 하게 된 이유는?
“역할이 매력적이었다. 실패한 삶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또 자유롭게 (의사를)표현하고, 거침없지만 연민이 느껴지는 좋은 캐릭터였다.”
-수영 코치 역할인데 수영장면이 없다.
“수영은 잘하는 편이다. 그러나 수영장면이 없어 아쉽기는 했다. 하지만 수영을 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라는 걸 깨달았다. 수영을 해봐서 그런지 수영할 때 어떻게 하면 바른 자세가 나오는지를 알겠더라.”
-광수를 어떻게 표현하고자 했나.
“정 감독님과 얘기를 나눴는데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에 중점을 뒀다. 광수는 자책과 반성이 없는 인물이다. 아시안게임에 나가지 못하고 실패했지만 만약 출전했어도 지금과 다르지 않게 살았을 듯하다. 대중적으로 좋은 캐릭터라고 얘기할 수는 없겠지만 매력적인 캐릭터다. 연민이 느껴져 애착이 갔다.”

-그간 작품 중 첫 주연작이다.
“영화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3)에서 김윤석 선배를 비롯해 여진구의 다섯 아빠 중 한 사람으로 출연하며 주연급 연기를 하긴 했다(웃음). 하지만 워낙 출연 배우들이 많아서 눈에 띄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4등’은 주연이라고 하니 책임감이 남다르더라. 일단 영화가 너무 잘 나와서 좋다.”
-사연 많은 캐릭터를 좋아하는 듯하다.
“스토리가 있는 캐릭터를 좋아한다. 악인이나 선한 인물 따지지 않지만 고민을 가지고 있는 역할에 끌린다. 요즘에는 연민이라는 감정에 꽂혀있다. 연민을 느낄 수 있는, 고독한 캐릭터라면 어떤 작품이든 해볼 생각이다.”
-‘미생’ 속 천 과장으로 인기를 얻었다
“‘미생’은 11회 때 중반부에 합류했는데도 천 과장 연기로 알아봐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좋았다. 또 좋은 이미지도 얻게 됐다. 당시 ‘미생’에 합류하자마자 ‘4등’에 캐스팅 돼 촬영을 시작했다. ‘미생’ 출연 이후에는 다행히 영화나 드라마 쪽에서 불러주셔서 꾸준히 출연의 기회를 얻었다.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 같다.”

-‘4등’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작했는데.
“처음에는 인권과 관련된 영화인지 몰랐다. 대본도 그렇게 비춰지지 않아서다. 촬영을 하면서 영화가 좋은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일단 인권 쪽으로 국한되지 않고 다른 얘기를 하는 것 같아서 좋았다.”
-영화를 통해 인권 문제에 대해 생각해봤는지.
“사실 폭력이라는 것에 무뎠고 아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며 성장했다. 중ㆍ고등학생 때에도 맞으면서 학교를 다녔다. 한편으로 체벌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를 찍다 보니 맞을 짓이라는 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폭력이라는 건 어른들의 실수일 수도 있겠다.”
-영화 속에서 준호(유재상)를 체벌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은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었다. 과연 재상이가 체벌하는 장면을 찍을 때 왜 맞는 걸 찍어야 하는 지 알고 있을지, 그 장면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비춰질지 몰라 고민했었다. 정 감독께 ‘이걸 진짜 해야 돼요?’라고 되묻기도 했다. 단 한번도 사람을 때려본 적이 없어서 더 힘들었다.”

-학창시절 체벌을 당한 적이 있나.
“중ㆍ고등학교 시절에는 말썽을 무척 피웠다. 아마도 호된 사춘기를 보낸 것 같다. 한 번은 머리카락이 길어 잘라야 한다는 지적을 받고 다음날 삭발을 해서 학교에 갔다. 내가 선동해 친구들까지 삭발하게 만들었다. 아마도 선생님에 대한 반항심이 아니었나 싶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선생님께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코믹 연기에 도전해 볼 생각은 없나.
“연극으로는 코미디 연기도 했다. ‘늘근도둑 이야기’에서 찌질한 남자를 맡아 연기했다. 역시 연민이 느껴지는 인물이었다(웃음). 좀 불쌍해 보이고 싶다. 어떤 스님께서 인간의 ‘5욕7정’에서 ‘8정’이 있으면 연민이라는 감정이 들어간다고 했다. 연민이 있어야 다른 사람들과 관계가 이어지는 것 같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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