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갯벌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희고 작은 바닷새들 가운데 ‘넓적부리도요새(Spoon-billed Sandpiper)’가 있습니다. 부리가 숟가락처럼 생겨 국내에서는 넓적부리도요라 부릅니다. 학명은 ‘Calidris pygmaea’로 작은 얼룩물새를 뜻합니다.
‘너희들은 모르지 우리가 얼마만큼 높이 나는지’로 시작되는 도요새의 비밀이라는 노래도 있는데요, 도요새들은 높이 난다기 보다는 멀리 나는 새입니다. 뉴질랜드에서 한국까지 6~7일에 걸쳐 약 1만 ㎞를 쉬지 않고 비행한 기록도 있습니다.
넓적부리도요는 러시아 북동부에서 번식하며, 동남아에서 겨울을 나는데요, 5월 말에서 6월 초에 러시아에 도달한 후 민물호수 인근의 풀밭에서 6,7월에 번식합니다. 새끼는 알에서 19~23일 후 부화하며, 태어난 후 바로 스스로 먹이를 먹습니다. 다 커도 크기가 14, 15㎝, 몸무게 29~34g 정도에 불과합니다.
새끼들은 주로 아빠 새가 돌보고, 어미 새는 부화 직후 바로 남쪽으로 떠납니다. 약 20일간 지난 후 새끼들은 아빠 새로부터 독립해 북한, 한국, 일본과 중국의 태평양 연안을 따라 남으로 약 8,000㎞를 이동합니다. 우리나라는 이동과정 중 거치는 중간 기착지입니다. 이후 인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와 버마, 태국, 베트남과 필리핀, 말레이 반도와 같은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에 도착하여 겨울을 납니다.
중요한 것은 넓적부리도요가 전 세계에 1,000여 마리도 남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넓적부리도요의 생존에 가장 큰 위협은 번식지의 서식지 소실과 더불어 이동경로 및 월동지의 갯벌 매립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장기 원격추적기술로 확인한 연구 결과 중국, 한국, 북한의 주요 서식지 중 이미 65%가 간척으로 사라졌습니다. 한국의 새만금 지역과 같은 갯벌지역은 남반구에서 북극 번식지까지 왕복 1만5,000~2만㎞를 오가는 도요새들에게 가장 중요한 중간기착지였으나 이미 물 막이 공사가 끝나 치명적인 위협 요인이 되었습니다
국제자연보전연맹에서는 넓적부리도요를 2008년부터 위급(CR·Critically Endangered·야생에서 절멸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음)단계로 재조정했습니다. 2009~2010년 총 조사에 따르면 넓적부리도요는 전세계에 120~200쌍(약 500~800개체)만이 남은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는 2002년도 총 조사와 비교할 때 88%의 감소한 것으로, 해마다 26%씩 감소했다는 겁니다. 매년 태어난 새끼들 중 오직 0.6마리만 살아남는 상황입니다. 그나마 남아있는 번식가능 개체군 역시 나이가 들어 번식은 점차 어려워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대로 방치할 경우 넓적부리도요는 5~15년 이내에 멸종에 도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넓적부리도요의 멸종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사업이 모색되고 있습니다. 2011년 11월 영국 야생조류와 습지신탁(Wildfowl and Wetlands Trust·WWT)에서는 13마리의 넓적부리도요를 대상으로 번식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2012년 방생한 암컷이 2014년 러시아 번식지에서 산란을 위해 도래한 것이 최초로 확인된 바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충남 서천의 작은 섬에서 그나마 몇 마리가 관찰될 뿐입니다.
이동성 조류의 보전을 위해서는 책임을 가져야 하는 국가들이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중간 기착지는 이동성 조류에게 고속도로 상의 주유소와 같은 역할을 수행합니다. 주유소가 없다면 결국 도착하지 못하고 고속도로 상에서 차는 멈추겠지요. 이대로라면 넓적부리도요는 우주의 역사에서 지워질지 모릅니다.
야생생물의 보전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위함이 아닙니다. 생물과 공존을 해야 하는 후세대를 위한 우리의 책임이자 의무인 것입니다. 도도새가 그러했고, 나그네비둘기가 없어졌던 것처럼 이 작은 새를 또다시 없애서는 안 됩니다.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병원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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