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근처 주택가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그중 재개발 열기로 들끓던 이십여 년 동안에는 언제 떠나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며 살았다. 동네 아래위로 고급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소위 노른자위라 판단되는 우리 동네의 집 주인은 거의 강남 사람들로 바뀌었다. 문화재로 지정된 근대 건축물이 있고, 아직 복원되지 않은 서울 성곽 위로 주택가가 형성되어 처음부터 이곳이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된 것부터가 황당한 일이다. 스스로 잘못을 인정한 서울시에서는 얼마 전 재개발 추진 경비 일체를 보상한다는 대책안을 내놓았다 들었다. 이쯤 되니 나도 무리를 해서라도 어떻게든 집을 장만하여 안정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작은 평수의 집들을 눈여겨보게 된다. 실수요자인 내가 집들을 눈여겨보고 다니는 골목에는 요즘 낯선 사람들이 부쩍 눈에 띈다. 그들은 한 푼 없이 거주지를 마련하려고 하는 나 같은 사람과는 반대인, 투자를 위해 돈을 들고 집을 보러 다니는 사람들이다. 휴일에는 부부가 같이 다니는 것도 자주 볼 수 있는데, 앞뒤에서 들리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 나와 비슷한 연배인 그들에 비해 나는 너무도 일찍 성장이 멈춰버린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을 받곤 한다. 그들만이 진정한 사회인이자 어른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럴 때면 착잡한 내 머릿속에서 문장이 되기 전의 단어들이 가시처럼 나를 찌른다. 그 중에서 오늘 내가 온종일 탐닉한 단어는 ‘자존감’이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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