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노멀(New Normal)’이라는 말은 경제에서 처음 쓰였다. 저성장ㆍ저물가ㆍ저금리의 경제상황이 구조화한 상태를 가리켰다. 고성장ㆍ고금리가 정상이던,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전과 구별되는 기준ㆍ표준, 즉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라는 뜻에서 여러 전문가들이 썼다. 연 7% 이상 고성장을 구가하다 한풀 꺾인 중국 정부도 뉴 노멀을 그대로 받아서 신창타이(新常態)를 외친다. 반면 우리는 저성장 사회로 접어든 지 오래인데도 정부의 정책마인드는 여전히 고성장시대 눈높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 20대 총선은 왠지 뉴 노멀 분위기가 감지된다. 여러모로 전과 다르다. 대통령 임기 중반에 실시되는 총선은 대통령의 직무ㆍ정권 평가 성격을 갖는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 임기 중ㆍ하반기에 실시되는 상ㆍ하원 선거에서 집권당이 이기는 일이 별로 없지만 우리는 여당의 압승까지 점쳐진다. 이번에 제1야당이 정권 심판론을 들고 나왔지만 먹히는 분위기가 아니다. 한국일보 유권자 여론조사를 보면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고 해서 여당이 들고 나온 야당 심판론이 뜻밖에도 정권 심판론과 비슷한 정도의 유권자 공감을 얻고 있다.
▦ 선거마다 불던 바람도 이번에는 딱히 없다. 바람은 총선의 큰 변수다. 17대 총선에서 불어 닥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이 대표적이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게 ‘탄돌이(열린우리당 386 초선의원)’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은 사지에서 겨우 생환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두 달 뒤 실시된 18대 총선은 새 정부를 밀어주자는 표심이 크게 작용했다. 선거마다 변수가 된 야권의 후보단일화도 이번에는 흐지부지 됐다. 그나마 제3당 바람이 조금 이는 듯하지만 호남권에 국한된 얘기다.
▦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한 이번 총선에서 눈 여겨볼 대목은 유권자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그레이 보터(Grey Voter), 즉 60세 이상 유권자의 표심이다. 선거 사상 처음으로 세대 중에 유권자 수가 가장 많고, 투표율도 가장 높다. 60세 이상 노년층은 지난해 12월 한국일보의 행복 여론조사에서 행복도는 물론 경제, 가족 만족도가 세대 중에 가장 낮았다. 보수 성향 일색이라고만도 볼 수 없다. 고령화 사회의 핵심세대는 앞으로도 선거를 주도할 것이다. 정치권이 선거의 뉴 노멀을 깨닫고 있는지 의문이다.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