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상장폐지 디지텍시스템스
대출ㆍ보증 알선하고 억대 수수
금융브로커 등 3명 구속 기소
기업사냥꾼과 금융브로커가 기획한 1,100억원대 대출 비리에 금융감독원, 국책은행 직원까지 연루된 것으로 확인됐다. 6년간 3조원 가량의 불법 대출을 받은 가전업체 모뉴엘 사태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금융권과 감독당국이 방만ㆍ불법 대출 관행과 관리 소홀ㆍ부패 행태는 여전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부장 박길배)는 지난해 1월 상장 폐지된 중견 휴대폰 터치스크린 제조사 디지텍시스템스에 1,160억원 규모의 금융권 대출 및 보증을 알선하고 2억2,000만원에서 4억5,420만원을 수수한 혐의(특경법 상 알선수재)로 금융브로커 최모(52)씨 등 3명을 구속 기소하고, 곽모(41)씨 등 3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5일 밝혔다.
게다가 이 같은 금융비리를 감시해야 할 금감원 고위 직원까지 브로커들의 뒤를 봐준 것으로 드러났다. 강모(58) 전 금감원 부국장은 2013년 3월 금감원의 대출 비리 조사 무마 명목으로 유모(46) 전 디지텍시스템스 회장에게서 3,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특가법 상 뇌물 수수)로 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또 디지텍시스템스가 250억원의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편의를 봐주고 2,000만원을 챙긴 산업은행 팀장 이모(50)씨를 특경법 상 알선수재 및 특가법 상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브로커에게 대출 담당 직원을 소개하고 3,000만원을 받아 챙긴 전 국민은행 지점장 이모(60)씨는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 수사 결과 디지텍시스템스가 2012년 12월부터 2013년 11월까지 1년여 간 대출 받은 돈은 총 1,160억원. 수출입은행ㆍ무역보험공사ㆍ농협은행 등 국책금융기관과 국민은행 같은 시중은행, 저축은행이 망라됐다. 이렇게 빼돌린 대출금은 디지텍시스템스를 인수한 뒤 회사를 횡령ㆍ시세 조종 등 범죄에 활용하려던 기업사냥꾼의 손에 넘어갔다. 이들은 디지텍시스템스 명의로 빌린 대출금 일부를 빚을 갚는 데 쓰고, 또 다른 중견기업 엔피텍을 인수했다. 기업사냥꾼 최모(54)씨 등 2명은 디지텍시스템스와 엔피텍 명의로 빌린 돈을 횡령해 지난해 10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7년을 선고 받은 상태다.
대출금은 대부분 환수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280억원을 대출해 준 국민은행은 269억원을, 250억원을 대출해 준 산업은행은 218억원을 돌려받지 못하게 됐다. 다른 금융기관을 합쳐 총 855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손해를 금융기관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생겼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 과정에서 대출심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국책은행의 경우 여신심사위원회 의결 과정에서 전체 위원들의 충분한 심의ㆍ의결이 없는 등 형식적인 대출 심사 과정이 발견됐다”고 지적했다.
이현주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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