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일드카드(wild card)’는 원래 포커에서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만능패를 뜻한다. 스포츠에서는 비록 출전 자격을 얻지 못했지만 특별히 허용하는 선수나 팀이라는 의미로 널리 쓰인다. 국제축구연맹(FIFA)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부터 남자축구의 출전 연령을 23세 이하로 제한했다. 그러나 흥행에 실패하자 1996 애틀랜타 올림픽부터 팀 별로 최대 3명까지 23세 초과 선수를 와일드카드로 허용해 출전하게 했다. 감독에게 ‘천군만마’지만 양날의 검이다. 어린 선수들과 융화하지 못하거나 부담 때문에 제 실력을 발휘 못하는 와일드카드가 많았다. 한국도 사상 첫 동메달을 딴 2012 런던올림픽의 홍명보호를 뺀 나머지 대회에서 와일드카드로 재미를 본 적이 없다.
리우 올림픽을 준비하는 신태용(46) 감독 입장에서는 유일한 성공사례 홍명보(48) 항저우 그린타운 감독을 벤치마킹하는 게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와일드카드의 선발 시기와 동기 부여 측면에서 신 감독은 오히려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홍 감독은 올림픽 개막 한 달여 전 최종 엔트리와 와일드카드를 함께 공개했다. 반면 신 감독은 공격수 손흥민(24ㆍ토트넘)을 와일드카드로 일찌감치 낙점했다. 나머지 두 자리도 어느 정도 정했다. 중앙수비수 1명, 수비형 미드필더 1명이 유력하다. 신 감독은 14일 본선 조 추첨을 마치면 울리 슈틸리케(62ㆍ독일) 국가대표 감독, 이용수 기술위원장과 최종 상의해 와일드카드 3장을 확정한 뒤 바로 발표할 계획이다. 와일드카드를 조기 확정한 이유는 소속 팀과 일찌감치 협조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각 클럽은 올림픽 선수 차출에 의무적으로 응해야 하지만 와일드카드는 소속 팀 허락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지금부터 조율이 필요하다. 손흥민의 경우 이미 토트넘과 이야기가 오고 갔다. 나머지 두 명도 물밑에서 접촉 중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보안을 유지하는 건 어렵다. 중간에서 엉뚱하게 소문이 나거나 언론에 노출되기 쉽다. 신 감독은 와일드카드 3명을 빨리 공표하는 대신 그만큼 더 철저히 준비하는 쪽을 택했다.

올림픽에서 동메달 이상이면 병역 면제다. “병역 면제 받고 싶다”고 대놓고 말하는 선수는 없지만 엄청난 당근이다. 런던올림픽의 와일드카드 3명은 군 입대 직전이라 병역 혜택이 절실한 자원이었다. 반면 나머지 대회 와일드카드는 대부분 병역 의무를 마친 선수들이었다. 결과만 놓고 보면 병역 혜택을 받기 전 선수들의 정신무장이 더 좋았다는 등식이 성립한다. 올림픽은 아니지만 28년 만에 한국에 금메달을 안긴 2014 인천아시안게임 때도 와일드카드는 모두 군 입대를 1~2년 앞에 둔 선수들이었다.
리우 올림픽 와일드카드 중 손흥민은 군 미필이지만 신 감독은 나머지 두 명은 병역을 해결한 선수로 발탁할 계획이다. 병역이란 굴레에 얽매이면 시야가 좁아져 꼭 필요한 자원을 못 뽑을 수 있다는 판단에 아예 미련을 접었다. 대신 이들에게 확실히 동기를 심어주는 게 신 감독 과제로 남았다.
윤태석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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